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교사시절 모교인 대학에서 겸임교수를 한 적이 있다.
지금처럼 공모제가 아닌 시절이지만
은사님 강의의 한 주차 강의를 팀교수 첫강의 데뷔 무대로 허락하신 이후,
모교의 학부와 교육대학원 강의는 내게 영광의 기회와 경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보았던 학생이자 후배들 중 지금도 연락을 하는 이들이 있다.
당시의 모든 학생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의 수업 태도와 반응이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연고가 없는 지역의 대학으로 직장을 이동하였을 때
축하 떡케익과 화분을 보낸 이가 있어 누가 보낸건지 의아했는데
강의 시절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 꽤 많이 살고 있어
발령 소식을 듣고 함께 축하를 해준 것이었다.
아~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가 싶었다.
이 지역에서 어떤 끌어당김이 있었을까.
교사가 된 학생 중에서 유독 시험을 못보았던 시험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직도 당시 제출했던 답지가 선명한 그 후배는 임용시험도 합격하여 교사가 되어 자녀를 낳고 일가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게다가 교사이면서도 학업을 계속하여 특정 분야의 명장이 되어 있었다.
부인을 보니 선녀와 나뭇꾼,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관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처를 만난 것으로 보였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부인에게 후배를 거두어준 감사한 마음이 내내 있었다.
가끔 부부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보는 기쁨에 나도 절로 행복감이 넘쳐나곤 했다.
그런데 얼마전 그 사이 좋던 부부가 별거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다 알 수 없으니 상황을 모르고 남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다만 요즘 새롭게 깨달은 점은 온달과 나의 관계상 아전인수 해석을 배제하고 보았을 때, 여지껏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온달 왕자가 평강 아씨를 키운 것이라는 점이다.
둘 사이가 참으로 보기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마음이 미어진다.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우리는 지식 사고에 갇혀 외적인 조건의 시야로만 세상을 본다.
여러 원인이 겹쳐있겠지만 그 예쁘던 자녀가 자살 시도를 했다거나 정서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올때마다 부인의 박사 진학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부부의 양육 분담이나 스트레스 관리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등이 궁금해진다.
묻지는 못했지만 국가통계데이터에서 학력이 높을수록 이혼률이 높은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이 된다. 많이 배울수록 겸손해지라고 하였는데 공부가 짐이 되거나 완장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이 된다. 물론 박사 공부가 아닌 전혀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인 중 박사학위 취득 전후로 이혼한 여인 둘이 있고, 박사학위를 준비할 때 도와주지 않은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한 여성들의 소식을 간간히 접하는 나로서는 그토록 어려운 학업의 시기에 섭섭한 마음을 애도하느라 부군과 함께 뒷바라지한 자녀를 놓친 것은 아닌지 내내 걱정이 된다. 발달기 자녀의 정서가 너무나 중요한 시기에 "엄마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우리를 버렸다"고 했던 남편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계속 맴돌 때 세상에 당연한 일이란 없고, 지금도 가족들에게 부족하겠지만 가족에게 부채 의식처럼 남은 감사의 마음을 평생 갚아야한다는 책무를 잊지 않으려 한다.
많이 배웠다는 것은 지식, 이해, 전문성뿐 아니라 겸손과 바른 실천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방끈과 인성이 반비례한다고 회자되는 세상에서 배움은 가오를 세우거나 완장의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다.
배운 사람의 도리는 윤리적 태도와 의무를 다하는 것, 청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의 변함 없음과 꾸준함은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