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준다는 허상

근거 없는 진정한 개소리 흘려 듣기

by 유진 박성민


은사님은 학회를 만들고, 충실하게 운영하는 걸 목표로 평생을 바치셨다.

제자들에게 매달 발표 자료를 준비시키고, 발표 역량을 강화시키며, 서로다른 학문의 융합을 시도하셨다.

은사님의 소원대로 학회는 자리를 잡았지만 후학들은 서로의 학회장 쟁탈전의 각축전으로 오염시켰다.

학회의 운영 철학을 듣지도 않고 오로지 자리에 연연하니 그 학회는 갈 길을 잃어버렸다.

교수님의 오랜 숨은 노력을 모르는 지금의 후속 세대들은 앞선 세대의 각축전만 보았으니 그보다 더한 상황을 만들지 않을까?


연구에 열성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성과를 나누어 주고, 그런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런 사람들의 지위에 조아리고 라인업하는 세상인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교도소 수용률이 낮은 이유가 범죄자 중에서 고학력 사기 범죄가 가장 많은데 대기자가 많아서라는 현실을 보면 지금 학회의 이런 모습이 낯설지도 않다. 사기의 종류만 다를 뿐 아닐까?


모든 학회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은사님이 만드신 학회에 희망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그 분야를 담당하는 인구가 희소해서이기도 하지만, 특정 대학들 간의 라인업은 이미 병폐가 되어버렸다.

그걸 없애고자 노력하였음에도 특정 대학 출신들끼리 운영하는 학회는 발표자도 학술지 논문도 그렇게 도배가 된다. 문제는 이것이 유행처럼 대학별 카르텔로 선점하는 방식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특정대학 출신이 담당하게 된 학회나 소속 대학연구소 학술지에만 논문을 게재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그런 학회의 속성을 이해하고 기피하여 점점 더 그런 학회의 회세는 쪼그라들게 된다.


열린 의사소통과 협력의 문화가 정착되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사유를 확장하는 기회와 장이 열린다. 서로의 역할도 대학과 출신에 관계 없이 잘하는 업무를 부여하면 운영이 원활하다.

그런데 학회의 재정이 특정 대학의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거나 연구 실적이 부족한 학회장이나 편집위원장이면서 자신의 논문을 계속 싣고 논문 심사의 힘든 허들을 쉽게 넘는 걸 배운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학회를 운영하며 쟁탈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경우 잠시 학회의 활용이 가능하겠지만 궁극적으로 학술적 권위 및 연구 윤리의 실추는 예견할 수 있다.


올해 처음 대학원에 석박사과정이 개설되어 타과에 비해 많은 분들이 모집되었고, 다음해 전형의 지원자가 많은 편이라 전형을 완료하지 않았지만 모집 인원을 보면 인원 배정의 비율이 대충 짐작이 갔다. 내년의 과목 개설을 위해 동료교수님에게 상황을 공유했는데, 학위장사를 하냐고 받을 수 있는 인원만큼만 받으라는 거친 조언을 하였다. 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지? 그러면서 내가 대학원 석박사를 나온 대학의 학부생에게 무슨 도움을 주고 있냐며, 대학원 석박사가 많다고 학부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질문을 하였다. 나는 석박사를 받은 대학의 학부생을 위해 장학금을 낸 적이 있다고 하였으나 본인의 학부와 동일해서인지 그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우리 학부생이 석박사생 소속 학교에 교육실습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도 하여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동료는 본인이 나온 석박사 대학의 학부에 장학금을 기부한 적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대학원에 석박사 졸업생도 안나왔는데 동료의 기가 막힌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말한 이유의 요지는 당신의 세부전공과 일치하는 학생만 받겠다는 의도이다. 지난번에도 지원자가 많았고, 다행히 총정원제 티오 배분으로 타전공이 채우지 못한 티오를 받게 되어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선발하게 되었을 때도, 대충 가르치려고 하냐는 막말을 한 적이 있는데. 대충 가르친다면 과연 등록금을 내고 오랜 세월 공부를 해야 하는 지원자들이 많아질 수 있을까. 왜 그런 의사표현을 그렇게 공격적 언사로 하였을까.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 쉬운 길(과목과 학점)을 선택했던 동기들은 졸업과 학위 취득은 빨랐지만 학계에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길(easy going)을 선택하고 배운 동료들이 쉽게 이수한 과목 강의의 질을 가장 낮게 평가했었다. 최근 동료의 개인적 가정사를 해결하는 중에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높았을 수 있고, 본인의 전공과 맞지 않는 학생을 넘길까 싶은 걱정이 앞서서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평소 내 할 일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특성도 없지만, 학생들의 희망 전공에 적합한 배치를 할 것이기에 그럴 염려는 안하셔도 된다고 설명드렸다. 사실 그분의 체면을 고려하여 전하지 못했지만, 석박사 지원자들이 그 동료를 지도교수로 신청하지는 않았기에 그럴 염려는 없었다. 매번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내가 본인의 자존심을 고려하여 말하지 않은 것을 동료는 모른다. 대체로 상대가 받을 상처를 고려하여 우렁각시를 해주는 깊은 속내를 사람들은 잘 못알아챈다. 가족이나 직장에서도 별로 업무의 생색을 내지 않는 편이어서인지, 업무 성과에도 동료들에게 고생했다거나 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좀처럼 힘들다. 예와 도리를 다하는 과정에서조차 함부로 평가 당하는 입장이 될때마다 50대 남자의 갱년기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원로들이 어떤 공을 칭찬하실 때 제가 아니라 동료들이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하면, 네가 한 것 다 안하고 하시는 경륜에 놀랄뿐이다.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생겨 대나무숲처럼 브런치에 실컷 뒷담화를 하니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순간적인 효과일 뿐 지속적으로 나쁜 기억을 반추하면 나를 괴롭히니 나쁜 기억을 많이 만들지 않고 잊으려 한다. 상대에 대해서 미운 마음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면 내 인생이 힘들어진다.

그렇다고해서 모두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반복된 결례나 뒷통수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번의 무례한 경험을 통해 반복되는 설명이나 설득보다 언젠가는 반박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그리고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이번 일로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으로 족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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