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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Jan 01. 2024

우리가 놓친 것

동병상련의 역설(paradox)

30년 전 제자의 어머니가 오랜만에 연락을 주셨다

특수교사를 그만둔 지 10여년이 넘었는데도 인연을 이어가는 부모님 중 한 분이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유명 작가의 기사가 연이어 나와서다.

앞으로 장애가 심한 장애인이 이 세상에서 살기 더 힘들게 되었다는 걱정을 하셨다.     


제자 몬드리안은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함께 가진 중복장애인이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몬드리안은 마음에 드는 운동화 깔창을 수집하러 교실밖으로 조용히 나가고 없어져, 전교를 돌며 몬드리안을 찾으러 다니길 여러번이었다. 30년 전에는 학교에 지원인력이 없어 옆 반 선생님께 우리반 학생들을 잠시 부탁하였었다. 수집해 온 운동화 깔창은 전교에서 몬드리안만의 기준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하루는  체육 수업을 하는 중에 몬드리안이 착석을 하지 않고 하도 돌아다녀서

몬드리안을 번쩍 안아서 의자에 앉히고, 힘들어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눈 앞이 갑자기 번쩍했다

이내 코에서 콧물이 뚝 떨어졌다뭔가 하고 손바닥을 보니 코피였다.

아이를 억지로 의자에 앉힌 결과였다. 몬드리안이 내 얼굴에 헤딩을 한 것이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편식 지도를 하던 중 먹기 싫다는 음식을 아이가 잡은 숟가락을 함께 잡고 억지로 입에 넣으려고 하다가 손등을 물렸다. 물론 몬드리안 어머니께서 억지로라도 먹여달라는 요청이 있어서였지만,

몬드리안의 어머니께서 보고 계셨는데 너무 부끄러웠다아이에게 물렸으니 말이다

다행히 몬드리안의 어머니는 미안해 하시며 이해해 주셨다. 

당시 특수교사였던 나는 그랬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시 나의 교육방식이 옳고 아이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방식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요즘은 의자에 강제로 앉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먹기 싫은 음식을 강제로 먹여서도 안된다.

지속적으로 식습관 지도에 대한 관점과 지도방식도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발달장애인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다 발생한 마음 아픈 사건과 관련 소송들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의 식품 기호와 식습관의 관계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챙김 식사 등으로 식사지도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제자에게 물렸던 영광의 훈장은 손등에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의 잘못된 교육 경험을 통해  아이를 탓하지 않고, 아이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여 반영하지 못했던 나의 한계와 아이의 행동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 이후 아이의 행동이 촉발된 자극이나 원인(trigger)이 언제어디서 일어나는지 찾고 그러한 행동을 한 이후 상대나 주위로부터 받은 반응이나 결과가 무엇인지의 기능을 분석하여 문제행동을 자주 발생시키는 동기를 제거하거나 변화시키고긍정적 후속 결과를 발생시키는 바람직한 행동인 대체행동을 차별강화하는 것을 체화하였다. 이렇게 경륜이 부족한 교사 시절을 보내며 인간의 행동과 사고 및 신체는 모두 정서(감정)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통찰하게 되었다. 일방적 지시와 억제가 아니라 아이와 교감하며 이왕이면 친절하고 부드럽게 안내하며, 상호작용적인 격려와 촉진이 효과적이라는 것도 터득하였다. 


어릴적 화날 때 상대에게 머리를 박는 습관을 가졌던 제자 몬드리안은 현재 보호작업장에서 근무하며, 

취미로 나무에 색칠하는 자기만의 미술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최근에는 복지관에서 회화를 배우며 창작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깔창을 수집하여 포스터칼라를 섞고 또 섞으며 무채색으로 만들기를 좋아했던 아이

유리 조각을 수집하여 눈 앞에서 위험 천만하게 보던 아이는 

좋아하는 색종이와 물감 등을 안 주면 자기 머리를 박았지만

물감은 섞을수록 어두워지고

빛은 섞을수록 밝아진다는 특성을 이해하여 프리즘의 산란을 즐긴 것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은 날 

나는 과학실에서 프리즘을 빌려다 창가에 놓아주고, 

여러색의 물감과 포스터칼라, 셀로판지 등을 제공하였었다

심지어 물감과 포스터칼라를 좋아하여 어느날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몸에 물감을 칠하고는 벽에 몸을 돌리며 물감을 벽에 묻히던 2학년 몬드리안에게 그 시대에 유행했던 바디페인팅으로 너무 앞서간 행위예술을 하는 건 아니냐고 했었는데, 제자는 어느덧 나이 마흔을 바라보며 지금 작가로 등단 하였다.

아이가 크는데 이렇게 시간이 필요하다

     

동변상련이었을까.

매체에서 자폐성장애를 가진 10살 아이의 특성에 대해 낱낱이 제보한 내용을 접하셨다며

예전에 몬드리안이 머리 박고 신발 깔창을 수집하러 돌아다니던 시기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비슷한 처지의

부모님들이 당신 자녀보다 몬드리안은 장애가 심하여 다른 학교로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뒷담화에 속상했던 기억을 소환하셨다.

과거 부모님들 간의 도토리 키재기 상황을 몰랐기에 나는 통화를 마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행히 과거 학생들 중 가장 교육하기 힘들었던 제자 몬드리안은 좋아하는 물감, 셀로판지와 주부생활 잡지 등을 교사에게 '00(실물 또는 그림)+주세요' 라고 칠판에 써야 실물과 교환하는  의사소통을 시작한 후 해가 갈수록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변화되었다. 즉, 아이가 관심과 흥미를 가진 선호물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 줄고 바람직한 행동이 증가한 것이다. 

그래서 특수교육에서는 문제행동을 의사소통의 시도이자 욕구라고 바라보고 행동을 지원한다. 

 

한때 나 역시 교사였던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교사 입장에서 보면 다행이지만

흥분한 관중과 신중하지 못한 어른들 속에서

기사를 확인할 줄도 모르고기사의 의미도 모르는

돌발행동을 한번 보인 10살 아이의 삶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것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른들은 무엇을 한것인가.

범죄자의 신상도 고심하며 지켜주는 나라가 아닌가


인기 드라마에서도 권리를 표현하지 못한다고 무시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이 폭력에 노출되는 그때에는 사람으로서의 존엄이 사라진다

애초에 분노는 누구를 향해 있었을까.

우리의 분노는 무엇을 위한 일인가.

학대신고와 소송이 아니라 서로 사과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누군가를 살리려고 하다가 누군가를 죽이고 말았다.

모두 소중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특수교사는 교육만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역할도 있다.

한때 특수교사였던 나는 지금의 상황이 paradox에 빠진 현상인지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계속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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