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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Jan 01. 2024

여보세요 여보세욧

음성에도 태도(attitude)가 스며 있다

콜센터 상담원에게 문의 전화를 건다.

상담원이 매뉴얼대로 전달하는 기계적인 대화 방식이 참 힘들 때가 있다.

내가 '감사합니다'로 마쳤는데 마지막으로 안내하시는 분이 '감사합니다'로 마쳐야 하는가보다. 

'감사합니다'를 서로 주고받다가 어느새 노래처럼 반복된다. 

때로는 질문 요지에 대한 답변보다 맥락상 연관될 수 있는 책임의 소재를 거듭 반복하며 처리 결과에 상담원의 안내가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계속하여 확인하신다.  

매뉴얼 지침대로 응답하는 것과 결과 예측을 미루는 신중한 답변도 이해가 가지만,  처리 결과의 책임 소재가 본인이 아니라는 주제로 답변이 계속되는 것에 답답했다.

나의 질문은 직원분께 책임 소재를 부과하려는 것이 아니며,  예측되는 결과의 경우와 처리 과정을 묻는다고 설명을 드려야 경청을 한다. 매뉴얼에 근거한 대화 내용에만 집중하느라 정해진 질문과 다른 내용으로 상대가 물을 때 이런 대화가 반복될 때가 있다.

차분히 생각해보니 콜센터 직원이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업무에 아주 충실하게 응답한 것일 뿐이고, 새로운 방식의 나의 질문은 매뉴얼에 없었기 떄문이다. 

특히, 책임을 지는 부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text보다 context 중심의 소통에 갈증과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요즘 달라진 것은 콜센터 직원보다 AI콜센터 직원이 대신 전화를 받는 것이다.

콜센터 AI 상담원은 워낙 느긋하여 답답해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정해진 매뉴얼대로 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들어도 대화를 시도할 수조차 없다.

콜센터 AI 상담원은 매뉴얼 안에 없는 내용에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 결국 통화가 끊어지거나

콜센터에 따라서는 사람 상담원을 연결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콜센터의 상담원과 통화할 때 '여보세요'가  AI 상담원과 통화할 때 '여보세욧'이 된다.

콜센터와 질문을 이어가고 싶은데 매뉴얼에 나오는 대답만 하고 전화가 끊어지니 나도 모르게 '여보세요'가 아닌 '여보세욧 여보세욧''하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7080인 나는 디지털 이주민이다.  디지털 원주민이 아니어서 디지털기기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정서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콜센터 직원과 정스럽게 훈훈한 인사를 주고 받으며 머쓱하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 음성에도 attitude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음성마다 색채와 온도가 있어 듣는 이에게 평안과 치유, 힐링이 되기도 한다. 화가 난 음성인지 기분 좋은 음성인지, 지친 음성인지 에너지를 전해주는 음성인지에 따라서 똑같은 정보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람의 정서(감정)이다. 


최근 콜센터 직원의 무더기 해고 사태를 보며 예견했다고들 하지만,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AI 기술의 속도에 무던히 따라가야하는 것도 인간으로서 쉽지 않다. 미래에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할 것이며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예고에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은 해당 기술 적용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언제까지 앞다퉈 기술의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과의 상호 협력의 보완 관계를 놓칠 것인가. 혁혁한 발전을 이룬 기술도 결국 사용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편의성에 의해 AI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겠지만, AI 기술 발전의 목표이자 본질인 인간성을 놓치지 않기를 2024년 1월 1일에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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