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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Jan 01. 2024

내 마음의 쉼표, 물 흐르는 듯이

1. 처음 통합교육 장면에서 협력교수를 시작할 때

교사 생활 17년 중에 통합교육을 경험한 것은 7년이다. 특수학교 초등과정 교사로 7년을 근무했고, 3년간은 특수학교 유치원 과정 교사로서 일반 유치원과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시켰던 경험과 7년간은 유치원의 완전통합 장면에서 일반교사와 협력교수를 하며 유치원 졸업생들을 초등학교로 진학시켰던 경험이다. 돌이켜보면 해마다 보람되었지만, 교사로서 기억에 남는 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별히, 통합교육 경험의 첫해와 그 이듬해의 경험은 나를 통합교육의 마니아로 만들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그 영향으로 협력교수에 대해 공부하였고, 지금까지 통합교육 장면에서 협력교수를 외치고 전파하는‘협력교수’에 미친 사람이 되었다.  

 내 마음의 쉼표, 물 흐르는 듯이는 1. 처음 통합교육 장면에서 협력교수를 시작할 때, 2. 협력교수의 첫 경험을 반성하며, 3. 멋진 협력교수를 도전하기 위해서, 4. 협력교수의 성공적 경험의 순서로 이야기를 전한다.

   

  특수학교 유치원 과정 교사 시절 통합교육 장면으로 열심히 진학을 시키며 막연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유아들의 진학 이후 유치원과 일반학교의 추수지도와 상담을 하면서 일반학급 담임교사의 역할에 따라 아동들의 통합교육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중 통합된 장애아동의 부모님들과 장애아동에게 관심이 있는 일반교사들은 내게 계속적으로 상담이나 추수지도를 요청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늘 나는 간접적인 해결책을 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음을 직면하였다. 통합교육을 보다 뿌리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문득,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직접 통합교육 장면에서 일해보고 싶어졌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하듯  간절히 원하던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국립학교에서 새롭게 일하게 되었다. 새로 일하게 된 학교는 통합교육의 메카로서 외형적으로는 특수학교 내의 유치부를 둔 역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내형적으로는 일반교육과정 주도의 완전통합교육 실험 모형을 실시하고 있었다. 일반유아 대 특수교육대상유아의 비율은 3:1 정도로 교사는 유아교사와 특수교사가 협력을 전제로 한 협력교수 체제였다. 

  처음 통합교육 장면에 노출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교사와의 협력교수가 처음이었던 나는 협력교사인 일반교사와 어떻게 팀을 이루어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야 할지 함께 일하는 것에 약간의 의문을 가졌지만, 특수교사의 입장에서 일반교육과정을 수정하여 지도해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로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협력교수는 일반교사와 특수교사 모두 주와 보의 역할을 넘나들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당시 나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 두 달이 지나면서 누가 주로 이끌고 누가 보조를 해야 하는지의 역할 분담의 문제와 수업 진행을 위해 누구의 아이디어를 선택하여 운영할 것인지,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누구의 전문성을 더 신뢰하여 어떻게 일치시킬지, 일반유아와 특수교육대상유아 모두를 잘 가르치다가도 상황별로 특수교사와 일반교사의 책임이 다르게 될 때 어려움이 발생했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문제일 때 더욱 그랬다. 학급의 20명의 유아 중 특수교육대상유아가 5명이었는데 장애 정도가 다양한 상황에서 특히 이동 중 모든 특수교육대상유아를 동시에 담당하지 못할 때 일반교사가 교출하는 단 한명의 특수교육대상유아라도 잡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지만 일반교사가 일반유아들을 우선으로 챙기면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그 일을 일반교사에게 말하여 도와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그 일로 충돌이 있지는 않았지만 마음ㅍ속으로 불편한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조금씩 쌓여 가던 갈등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더 크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교육과정, 연간계획, 주간 계획 등에 관한 포괄적인 협력을 하였지만 수업에 대한 상세한 준비 없이 수업에 임하였다가 일반교사가 요청하는 자료와 교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서 자주 좌절했다. 그리고 자료를 제작하기 위해서 두 명의 교사 중 누구의 어떤 아이디어를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불일치하면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또한 왠지 모르게 일반교사가 진짜 교사이고 나는 일반교사의 보조 교사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일반교사가 모든 책임을 지닌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아교사는 특수교사의 그런 걱정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로 터놓고 어려운 점에 대해 대화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다보니 문제는 점점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야외 수업을 해야 할 경우 교출하는 아동의 문제를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 나선 뒤 한 아동이 교사의 시선 밖을 벗어나 찾아 헤매면서 괜시리 일반교사가 조금만 도와주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하며 야속하게 생각했던 일, 교출하는 아동과 보행이 불편한 아동이 함께 입급되어 있을 경우 누구라도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전문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 그림교환의사소통프로그램(PECS)을 실시할 때 즉각적으로 강화물을 제공해야 의사소통 욕구가 증진되는 데 그것이 음식일 경우 일반아동들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반교사와 의사결정이 안되어 장애아동의 친구들 몰래 교실 문 뒤에 숨어서 보상을 주게 되면서 보다 빠른 언어 발달이 지연되는 어려움을 겪었던 일, 일반아동이 활동 에 대해 물어봐서 내 방식대로 지도하고 안내해 주었는데, 일반교사가 다시 불러서 확인하고 안내해 줌으로써 은연중에 유아교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일반유아는 일반교사에게만 질문을 하고 장애아동은 장애아동만을 자기들의 교사로 인식했던 일은 내가 학급 구성원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마음 아픈 기억으로 떠오른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의사소통을 시도하였지만 의견의 일치보다는 마무리되지 않는 끊임없는 수평선과 같은 의사소통으로 이어져 이런 상황은 교육 장면에서 빈번히 되풀이 되었고 갈등을 싫어하였던 나는 그나마 서로 조금씩 맞추고자 노력하였고 맞춰져 갔지만 서로 의견이 불일치되는 부분에 대한 의사결정을 보지 못한 채 일반교사와의 의사소통을 포기하고 남은 기간을 보낸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하게 되었다. 의사소통을 위해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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