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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Feb 08. 2024

세상을 그렇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호구 잡히지 않으려면

워킹맘으로 첫아이를 키울 때 초등학교 부모 모임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는 전업맘들에게 호구 잡히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반모임이나 행사에 거의 참석을 하지 못하지만 어쩌다 주말에 반모임을 하게 되면 1년에 한두번이라도 참석할 수 있다는 기쁨에 두 번째 모임에서 찻값을 내고 나오니 어떤 어머님이 내 옆에 바짝 붙으며 “반모임에서 호구 잡히지 않으려면 앞으로 찻값을 내지 마세요. 엄마들이 계속 기대해요. 저도 직장 다니는데 말 안한거에요”라고 살짝 조언을 해주었다. 그냥 학급 일에 참여하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에 한번 찻값을 낸건데 알려준 그 어머니께 감사함보다 눈치 빠른 대처 능력에 감탄하였다.      


첫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학교에서 직업 탐색 관련 과제가 부여되었다. 교사일 때는 참석하기 어려웠던 반모임에 근무 시간이 자유로운 직장으로 이동한 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서너번은 학교 행사나 반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임원이 되어 전업맘은 나뿐이었지만 임원맘 모임에 참여하게 된 날 내 직업이 그러하듯 교육적으로 중학생들의 관심에 적합한 진로탐색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어, 학생들의 관심사를 취합하고 분류하여 학급의 부모님들 중 직장 견학을 제공할 수 있다면 협조를 구하여 중학생들이 관심을 가진 소프트웨어 회사, 요리 관련 식당, 부모님들의 다양한 직업의 직장 견학 등의 탐방을 제안하였다. 특히, 부모님 중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시는 아버님이 계셔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게 탐방 기회를 주면 진로 탐색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드리자 어머님들은 참 좋은 의견이라고 동의하셨다. 그런데 알아본다던 대표 어머니는 소식이 없었고, 아이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의 직장이라도 체험하자며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아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엄마 저기 친구들이 엄마들이랑 가고 있어요” 라고 외쳤다. 어디를 가고 있나 쳐다보다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학급의 임원 중 우리 아이만 빼고 아이들과 어머님들이 그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에 들어가고 계셨다. 워킹맘에게 전업맘은 절대 중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인터넷 글들을 보았지만 ‘설마 지금이 그 상황인 걸까?’라는 생각에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임원맘들은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취하였으나, 진정한 진로탐색 기회 제공 의견을 담임교사에게 제안하거나 정보를 학급 학생들에게 공유하여 견학지를 취합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아이도 당시 컴퓨터 언어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정말로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진로 탐색할 기회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은 치맛바람에 온데 간데 없었다. 아이에게  “어 저기 가는 거 엄마가 제안했는데, 친구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있니?”라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첫아이는 어릴적부터 순진무구하여 상황 파악이 안되는 중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워킹맘인 것을 숨기고 반모임에 참가해야 엄마들에게 고급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저런 필살기 글들을 올릴까 하고 말이다. 인간이 인간이어서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인간 인간이어서 실망이 될 때는 시기와 질투가 난무할 때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서글퍼지는 이유는 진심이 아닌, 계산적이고 정략적 관계일 때 그렇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발전적 의견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너무 협력적인 부모 모임을 기대한 것이 이상이었는지 지금도 고민 중이다. 미래에 어떠한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첫아이도 친구들 중 누구도 현재 소프트웨어 관련 전공을 하지 않고 있다. 욕심이 내 자식에게만 과해서일까. 이 사회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만 취하고,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 없이 ‘내 자식만 혜택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지 걱정이 되었다. 인간의 도구화는 앞으로 이 사회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대학생이 된 작은아이 고등학교 학급 엄마들 반모임 톡에서 그때도 학급 대표 엄마가 지금도 모임을 이어가는 대표를 하며 회비를 걷는다는 알림이 울린다.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자녀를 키우는 엄마도 계시어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눈팅만하고 모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인간을 수단화하지 말고, 내 자녀의 친구도 진심으로 잘 성장하기를 바라며 함께 잘 키울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관계이고 싶다. 허상일까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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