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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Jul 28. 2024

내가 명품이라 내가 입으면
모두 명품이 된다

자녀가 학원에 가는 시간을 보면 우리 아이가 보인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다.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었지만 부과된 삶의 무게가 그리 녹록하지 않아서이다.

여전히 분주히 할 일이 있어 감사하지만, 내게 힐링이 되는 삶의 여정 기록을  

한참이나 미뤄두는 것이 힘들었다.

휴일인 오늘도 마감을 앞두고 미리 할 일이 있지만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다가는 일과 삶의 조화는커녕 일과 삶의 균형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타인이 부과한 과제를 잠시 뒤로 하고, 오랜만에 

브런치에 나의 족적을 남기기로 했다.      


소비는 경제를 진작시키고 사회를 활성화시키는데 필요하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이 친구 어머님들이 자녀들의 명품 소비 습관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어 깜짝 놀랐었다. 명품을 구입한다면 스스로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자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고등학생에게 명품을 살 권한을 주시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명품 옷 구입을 거절할 방도가 없다고 하시는 말씀이 더 의아했다.   

  

나는 형편도 안되지만, 자녀에게 명품옷 구입을 장려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녀의 학원 선택과 학원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다니는 것도 유사한 과정이라고 본다. 

소비와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학원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자녀의 내적 요구에 의해 자율적으로 학원을 선택하고 다닐 때 효과적이다.     

나 역시도 큰아이를 처음 키웠기에 양육 과정에서 끝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한결 수월했다. 양육 경험을 통해 나름의 양육 지침을 세울 수 있어서다. 

학원의 생리를 알면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

간혹 어떤 학원은 부모의 불안을 활용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둘째는 중학교 1학년 1학기만 형을 따라 수학학원을 보냈다가 너무 다니기 싫어해서 그만둔 후로

학업을 위한 학원을 안다니고 인터넷 강의로 입시를 준비하여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의 학과에 입학하였다.     

물론 자녀마다 지식과 정보의 이해와 암기 및 유추 등의 정도 차이는 다양하고, 부모보다 더 잘 정서적 지지를 기반으로 동기를 이끌어 내는 학원도 있으므로 무조건 학원을 다니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학원의 명성만 믿고 검토와 점검 없이 자녀를 맡기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조언하고 싶다.      


나 역시도 학원을 다녀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큰 아이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갖게 된 나름의 소신으로 첫째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다가 중학교 2학년 말 겨울방학이 되면서 영어학원을 시작으로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수학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 학업을 위한 학원을 다니게 된 큰 아이는 신기한지 ‘새 세상을 만난 듯’ 고등학생이 되어서 국어, 과학까지 얹어서 다니겠다고 욕심을 내었다. 큰아이가 원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희망하는 학과에 진학하였다. 돌이켜보면 첫아이 양육 과정에서 후회되는 일이지만 거의 사교육 없이 중학교 3년의 과정을 전과목 모두 A였던 아이가 학원의 의존성을 갖게된 시작점이었다.     


큰아이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혼자 알아서 하는 아이였기에 직장맘으로써 학원에서도 내 자식처럼 봐줄거라 생각하고 믿고 맡기는 편이라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옆집 엄친아(전교권)가 다니는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원을 다녀도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고 유지만 되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큰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본인은 학원을 다녀와서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늦은 시간에 학원을 가야해서 피곤하여 집중이 잘 안되고 컨디션 조절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의견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사람마다 바이오리듬도 다르고, 한참 놀아야 할 나이부터 불철주야 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도 문제고, 결과가 보장된 것도 아닌데 맹목적으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딱하였다. 아침형 인간에게 저녁형 인간이 되라고 하니 아이가 피곤할만도 하였다.     


큰아이가 다니고 싶은 시간대가 아닌 늦은 밤시간에 편성된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변경하기 위해 학원에 전화로 요청했으나 안된다고 하여 성적이 정체된 원인도 질문할겸 학원에 상담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학원 원장과의 상담 내용에 놀랐고 그래서 그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요지는 첫째, 큰 아이가 희망하는 시간대는 전교권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자 마자 학원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 쉬었다 공부를 하고싶어 하므로 변경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둘째, 큰아이가 학원을 오래 다녀도 해당 과목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신 자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아무리 가르쳐도 성적이 안오르는 것은 아이의 이해력 한계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추후 3년간 다닌 수학학원의 원장과 처음이자 마지막의 전화 상담을 통해 들었던 내용과 동일하였다. 아무리 보조적인 사교육이라고 해도 선생님이 아이 탓을 하면 전문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학습 코칭에서 아무리 느린 학습자라도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고 학습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적용하는 것인데 학생의 진전에 대한 책임을 학생에게만 전가한다면 사교육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공교육의 책무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가 사교육비를 들여서 보내는 학원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한다면 그 학원이 존립할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예전에 큰아이 친구인 엄친아의 형 둘도 엄친아였기에 한번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형제들이 다니는 수학학원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유명 수학학원을 알려주었었다. 큰아이는 형제들이 말해준 수학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형제들은 내게 말해준 학원이 아니라 앞서 말한 문제의 학원에 무료로 다니고 있었다. 전교권 학생들은 그 학원이 아니어도 학업 성취가 높겠지만, 학원의 프랭카드에 적힌 전교권 학생의 이름은 충분히 유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전교권 학생들과 학원을 빛나게 하기 위한 어린 개미들의 퍼레이드는 야간의 불빛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진정한 자신감이 있다면 학원을 알려주지 못할 이유도 없는데, 이웃의 중고등학생이 어쩜 다니고 있는 학원을 거짓으로 알려주는가?”하고 실망했던 기억은 차치하고라도, 당시 큰아이가 전교권 아이들의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학원의 마지막 시간 운영을 위한 그룹으로 가장 늦은 시간을 채워주어야 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일을 핑계로 아이의 컨디션을 살피지 못하고 학원은 한 곳을 정하면 꾸준히 다니라고만 하고 학원의 적응이나 진전을 점검하지 않았던 무심함의 반성과 좀 더 세심하게 큰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이래서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보다. 만약, 그날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고 엄마가 분주하다는 핑계로 꾸준히 학원을 다니라고 했다면, 큰아이의 존재는 책임감 없는 학원에서 전교권 학생들을 받쳐주는 버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였을 수 있었다. 학원 구성원이 우리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내 자녀의 자신감과 자존감과 관련되므로 부모로서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최소위험가정에 의하면, 교사는 결정적 근거가 없다면 학생이 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교육하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세간의 뉴스를 보면서 사교육비를 내며 다니는 학원에서 간혹 가르치고 훈육한다는 명분으로 맞으면서 배우는 아이, 우리 아이의 진전에 대해 진심으로 책임지지 않는 학원, 학원비를 내면 현금영수증으로 올려준다고 해놓고 연말정산 때 확인이 안되는 학원,  아이가 학원을 안와도 보고를 안하는 근무 태만의 학원에 왜 그리 의존하는지 점검하여야 한다. 


살펴보면 자녀의 학교의 하교 이후 돌볼 수 없는 맞벌이 가정의 비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진정으로 도움을 받고 싶었던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으로 얻지 못하였다는 실망감이 장래 결혼과 자녀 출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학원이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할 수도 없지만  

'다 맞기도, 다 안맞기도 한 학원 이야기' 속에서 처음 자녀를 키워보는 부모들이 중심을 잡고 자녀를 키워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백이 넘으면 학업성취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이제 막 자녀가 성장하는 단계의 부모는 그러한 정보의 수용도 어렵다. 


이미 많은 연구 결과에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IQ와 학업성취가 높아도 대인관계에서 실패하는 경우 이성의 하이 로드만이 아니라 감성의 로우 로드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공감과 소통능력이 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자녀의 생애주기별 과업과 관련하여 양육 과정에서 학업 성취와 관련된 부모의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부모교육과 충분한 양육 정보의 안내가 필요해 보인다. 


요즘 청년들이 부모님들처럼 헌신하며 힘들게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어서 자신은 비혼주의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하는 입장에서 인생이 원래 그런 거니 둥실둥실 살라는 말이 젊은이들에게 와닿을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살기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 아무리 세상에 완벽한 평등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른으로서 우리는 친절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하루를 사는게 아니라 후세를 위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물려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 지점을 계속 고민하고 나아갈 방향을 마련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명품과 짝퉁 명품도 구분이 어렵다고 하는 세상에서 각자만의 고유함을 가지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잘 지킬 수 있다면, “내가 명품이라 내가 입는 옷, 가방, 신발 등의 소품은 다 명품이 된다”고 생각하고 말하며 개성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이기적으로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세상에 나는 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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