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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Jul 29. 2024

지금 학원을 보내고 싶은 부모에게

잘못된 결정의 동조효과 - 학원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 어떻게 바꿔야 할까


아들 둘을 키우면 엄마가 '욕쟁이', '이단 옆차기' 엄마가 된다. 

그런데 아들 둘 엄마가 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둘 다 모범생이거나 학업성적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교는 삼가라지만 내가 어릴적 받았던 받아쓰기 점수를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못해도 80-90점이었던 것 같은데, 첫째와 달리 둘째 아이는 줄곧 30점을 받아왔다. 조금 더 잘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저 신나게 놀기 바쁜 아이였다. 그래서 '나도 공부를 못하는 자식을 둘 수 있구나' 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스리기도 하였다. 국내 최초의 완전통합교육을 실시하는 유치원을 3년간 다녔던 둘째 아이는 특수교육대상유아들과 자연스러운 통합교육이 너무 잘되어서  하루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글자가 된다는 것을 가르칠 때 억울한 표정으로 우리반 누구,누구도 한글을 모르는데 왜 자꾸 공부를 시키냐며 항의했던 녀석이다. 그 누구와 누구는 두 명의 특수교육대상유아였는데 아이가 친구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질적인 통합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라 특수교사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하기야 이 녀석은 초등학교 진학을 앞둔 해의 겨울까지도 한글을 해득하지 못하였었으니 받아쓰기의 낮은 점수는 당연한 결과였다.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들이 걱정이 되서, 받아 쓰기 점수를  좀 올려보았으면 하는 의중을 내비쳤더니, 아주 해맑게 "엄마 저는 30점이어도 안우는데, 이상하게 우리반 00이는 60점이라고 울었어요. "라고 한다. 무한 초긍정에 어이가 없었지만, "아 아이는 인생관이 남다르구나.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산다면 앞으로 살아가는어려움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의 안도가 되었다. 게다가 '내리 사랑'이라고 하였던가. 둘째 아이가 아무리 받아쓰기 점수가 낮아도, 학교 공부를 못해도 성장하며 살아가는데 걱정 없이 헤쳐나갈 같은 막연한 믿음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과 상담에서 둘째 아이의 학업에 대한 나의 걱정에 대해 주신 답변은 학습에 무관심한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어머니, 공부 잘해봐야 우리같이 선생님이 되잖아요. 아이가 생활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 더 자유롭게 키우세요. 잘 될거에요!"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작은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몸집이 거대한데도 품성이 좋다는 이유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줄곧 주위에 있었다. 심지어 임원 선거에서 친구가 써준  선거 공약을 읽고 당선이 되었다. 후일 그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서 00이 덕분에 우리 아이가 임원이 되었다고 하더라며 감사 인사를 했더니 "자기가 나가야지, 친구에게 공약을 써주면 어떻게 하냐"고 아쉬워 하셨다. 나나 그 엄마도 아이들보다 덕의 함량이 부족한 건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들 엄마들 모임에 간혹 함께 하게 되었는데 중학교 1학년 1학기 이후 학원을 하나도 다니지 않는 둘째 아이를 두고 "00엄마, 00이 너무 오랫동안 학원 안다니는 거 아니에요?"라며 걱정 어린 조언을 받기도 하였다. 학습 동기 없는 학원의 출석은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양육방식에 대한 개입이이었는데 왜 꼭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생각 없이 다른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니까, 그렇게 다녀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여전히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부는 뒷전이고 축구를 열심히 잘하던 둘째 아이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철이 들었는지 앞으로 대학을 가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며 미술선생님이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냐고 물으셨고, 자기 작품을 자주 게시해 주시는데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미술을 배워도 되냐고 물었다. 뜬금 없는 미술 전공이라고 생각하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엄마 학교 근처와 동네 미술학원 말고, 미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미술선생님께 보내주세요"라고 요청하여 1년간 작가에게 그림을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때 배운 미술선생님들이 아이의 표현이 남다르다고 했었는데 여전히 아이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생각에 대학을 가기 위한 면피용으로 미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미술이 좋아서라면 1년을 배워보고 결정하자고 하였다. 내신을 버리고 정시에 몰입했던 둘째는 3년간 배운 회화와 디자인을 포기하고 다른 전공으로 진학하겠다며 정시 시험 한달 전부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미술학원에서 정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미술전공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니 미술학원의 실적에 비상등이 켜졌는지 정시 지원 마감일에 내 전화와 아이 전화에서는 불이 났다. 아이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하였지만, 결정이 확고하여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이 아닌 전공으로 진학한 둘째는 현재 미술도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 본인이 너무 하고 싶어 선택한 전공이 있는 대학에 마침 미술 전공도 있어서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아이의 고집은 금상첨화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수시로 변하고 알아서 성장해 간다. 만약, 내가 3년간 준비한 미술이 아까워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전공을 못하게 하였다면 지금처럼 즐겁게 대학을 다닐 수 있었을까.  둘째 아이의 친구들 소식을 들어보면 전공보다 대학에 초점을 맞추어 진학한 경우, 전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진로를 고민 중이며 전과나 편입을 고려하는 경우들이 있다. 대학이 SKY가 아니어서 국외 유학을 간 친구들도 있다. 대학 입시는 부모의 체면을 고려한 선택이 아닌, 자녀의 선택이어야 하며, 대학보다 전공 선택이 중요하다. 


간혹 나는 면접관으로 참여하는데 기억에 남았던 사례는 "왜 이 전공을 선택하셨냐"는 질문에 입시담당 교사가 고등학교 제자중 제자가 선택하고 싶은 전공이 있었지만 고등학교의 SKY 입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 억지로 SKY에 입학시켰으나 제자가 방황을 하다 결국 자살했던 사례를 통해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이 전공을 배우러 왔다는 참회의 지원 동기였다. 학원도 둘째 아이의 사례에서 수 있듯이 대학의 후광효과와 입시 성과를 위해 학생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학교도 학원도 부모만큼 자녀를 걱정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내 자녀는 비교를 당한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은 상담 과정에서 학원을 하나도 다니지 않는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얼른 큰아이를 유명 영재학원을 보내라고 하셨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과학을 좋아하던 첫째 아이에게 학교에서 영재고등학교를 추천해 주셨지만 대학시절 내 주변에 영재 대학에 다니던 친구들은 실제로 영재였기에, 나는 우리 아이가 평재라서 힘들거라고 말하였고, 참으로 고맙게도 선생님은 아이가 원하니까 밀어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입시를 준비하려면 대치동을 다니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의 진학 희망을 지원하기 위해 시험 4개월을 앞두고 의무감에 따라다녔지만 이미 초등학교 4학년부터 사교육으로 준비해야 하는 과학고의 선행학습을 통한 진학 방식에 아이는 한참 멀리 있었다. 이 또한 엄마의 정보 부족으로 큰아이는 영재학교 입학 기회를 박탈 당한 것일까. 선행학습을 통해 영재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영재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로 잠재력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 오랜 기간의 사교육의 준비도를 보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진짜 영재가 아니라  선행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영재들이 영재학교를 나와서 의사가 되려고 하는 시대에 영재학교의 설립 목적은 많이 퇴색되어 보였다. 다행히 아이의 꿈은 연구자 또는 과학교사였기에 현재는 사범대에 진학하여 과학교사의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상심이 컸을 큰아이에게 이렇게 위로하였다. 네가 과학교사가 되어서 영재고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아이들 중 영재뿐 아니라, 과학을 좋아하고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학생을 선발하여 꿈을 키워 주고, 중등교사로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과학에 관심과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라고 말이다. 내가 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이상을 꿈 꾸는 걸까. 사교육 없이 학교 교육만으로는 과학자가 되기 어려운 구조인가. 그렇다면 학생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도록 학교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들이 대놓고 학교선생님보다 잘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을 따르고, 심지어 자로 매를 맞으면서도 학원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 교사들이 혼자 공부하는데 성적이 이렇게 좋으면 영재학원을 보내라. 영재고등학교를 가려면 대치동 학원을 다녀라가 상식적으로 학생에게 적합한 조언인지 한때 교사였던 나로서는 지금도 의문이 든다.  과학영재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면접 준비과정의 치열함은 입학 준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보다 좀더 이르게 입시를 준비하는 조기 입학 시스템 같았다. 교대와 사대에 입학하기 위해 입시학원 면접 연습을 두 번 참관했던 나는 다른 학생의 경험담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가로채는 모습에 놀랐고, 합격을 위해서라면 날조된 경험담으로 입시 면접관들의 심금을 울려 교사가 된들, 도덕도 양심도 배려도 체면도 없는 일부 교사에게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학교의 재구조화를 위해 학교도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의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려는 반성적 변화가 필요하다.


유튜브 동조효과 실험에서 인간은 6:1로 쉽게 휩쓸리고 정상과 비정상 중 비정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였다.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이상하구나, 괜히 튀는게 싫어서 묻어가자"는 선택을 함으로써 집단의 70%가 틀린 답을 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연구결과이다. 인간은 인간관계를 맺고 포함되려는 강력한 동기가 있어 배제되는 경험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틀린 답에 동조한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과거 국가의 흑역사 속에도 아픈 상처가 면면히 남아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사람에게 위로 받기도 한다.   


학교와 학원의 선택에도 동조효과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부모도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잘못된 결정을 자녀에게 강요할 수 있다. 집단의 2/3가 틀린 답도 답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세상에서 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자녀의 의지와 조절력을 기르기 위한 부모의 노력과 양육 지침을 고심하고 마련해야 한다. 상대를 그저 내가 먼저 오르기만 하면 되는 대상으로 삼는 서열화 인식, 돈이면 무엇이든 만들어 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업무에 진정으로 몰두하기 어렵다. 나아가 소속감에 대한 욕구로 인해 소외계층,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부족해질 수 있다. 그러나 다양성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학교와 학원에서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누군가는 중도에, 누군가는 노인이 되어 어차피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가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모든 학생을 살리기 위한 교육이 미래를 위한 교육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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