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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Jun 16. 2024

꽃놀이 후기: 시인의 마음으로 살기

샤스타데이지를 보고 왔다. 내가 이런 특급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동문 산악회의 한 후배는 산과 자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주말에 별일 없으면 거의 하이킹이나 트레킹을 간다. 그것도 몇 시간 차를 모는 것은 개의치 않고 지방으로 원정을 간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다녀온 여정을 사진과 함께 동문 산악회 밴드에 올려준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품을 팔아 밴드에 공유하는 동문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올려준다. 방구석 1열 산행을 제공하는 그가 내게는 무척 고마운 존재이다. (완성도 높은 사진들은 1열 관람객들이 받는 보너스다!)


그 후배가 이번에 밴드에서 번개를 공지했다. 6월 10일부터 6월 25일 사이가 정선 하이원하늘길의 샤스타데이지가 절정이라며 함께 갈 사람은 신청하라고 했다. 6월 15일 토요일. 이 날 정도면 적어도 수업은 종강이니 시간을 낼 수 있겠지 싶어서 10일 전에 올라온 공지에 참가 댓글을 남겼다. 그런데 이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생긴 망설임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은 남편이었다. 본인도 가고 싶다고, 무거운 것은 본인이 들어주니 10km 정도의 긴 코스도 내가 감당 할 수 있을거라고 해서 아침잠이 많은 내가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해야 하는 고행을 각오하게 되었다.


모두 6 사람이 다녀왔다. 번개 산행을 리딩하는 후배가 차량 제공에 운전까지 도맡았다.(How nice!) 산행의 장점을 잘 누리는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휘리릭 스캔하며 바라본 사람들을 천천히 스캔하며 바라볼 수 있었다. 걸으며, 쉬며, 먹으며, 마시며 툭툭 터지는 담화 속에서 청량음료 같은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각자의 책상 앞에서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던 부부도 그 담화에 합류하며 상대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듣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민들레 씨를 가지고 노는 후배들 덕분에 민들레 홀씨도 실물로는 난생처음 자세히 보았다. 평소에 느끼는 것, 아주아주 작은 꽃도, 꽃잎들이 감싸고 있는 "미인의 속눈썹 같은" 암술 수술도, 꽃이 지고 난 후의 야무진 씨앗들도 그 자체로 하나의 큰 세상이요 큰 우주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즉 내겐 그 하나하나가 인간에 비하면 아주 완벽해서 더 거대한 존재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도 그렇게 완벽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사회가 문화, 제도 등이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동행들과 자연과 삶의 아주 작은 것들도 놓치지 않고 보고 느끼는 시인의 마음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렇게 많은 것을 느끼는 시인은, 그리고 그런 시인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겠어요라는 동료샘의 코멘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떠오른 시가 다음의 시였다.


궁둥이로 쬐다 / 이재무


전동차에서 한 아낙이 일어선 자리에 앉는다.

따뜻하다.

그녀와 몸이 데운 의자의 온기를 궁둥이가 쬐고 있다.

궁둥이는 낯가림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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