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오가와 요코, 현대문학)

by 라이프 위버

이 책은 아주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다. 너무 따뜻해서 우화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에 수많은 일본인들이 열광한 것(이 책은 2003년에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하였다)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 같다.


60대인 박사는 영국 명문 대학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고국에 돌아와 교수를 하던 중 40대 후반에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다. 그 일로 박사는 80분 이내의 것만 기억하게 된다. 내레이터인 ‘나’는 20대 후반의 싱글맘으로서 박사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가게 된다. 박사의 뜻밖의 완강한 주장으로 그녀의 10살짜리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박사의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이야기는 바로 세 사람의 관계, 즉 박사와 ‘나’ 그리고 그녀의 아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것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나’는 18살에 미혼모로 혼자 아이를 낳고 가사 도우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에 가서야 역시 싱글맘이었던 어머니와 겨우 화해를 했는데 그 어머니도 곧 돌아가신다.


비록 가사도우미로서 박사를 만났지만 그녀는 누추한 집, 초라한 외모(박사의 키는 160cm 정도밖에 안 되었다), 기인 같은 행동 너머에 존재하는 박사의 맑은 영혼, 빛나는 지성, 위대한 겸손, 따뜻한 가슴,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알아본다.


한편 그녀는 박사를 수학을 통해 진리의 세계를 얼핏 얼핏 보여주는 스승으로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보호해야 할 특별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존재로 바라본다. 80분 이상 지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박사지만 그녀를 감동시키는 많은 행동들을 보여준다. 평소에는 쓰러질듯한 자세로 걷는 박사가 아들 루트(수학의 루트 기호처럼 머리가 평평하다고 박사가 붙여준 별명이다)가 손가락을 베었을 때 아이를 업고 놀라운 기력으로 병원으로 달린다. 그리고 그녀와 루트로부터 귀한 에나쓰의 야구카드(그의 기억이 멈춰진 1975년 이전에 그는 야구선수 에나쓰의 열렬한 팬이었다) 선물을 받고는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벅찬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감동은 나의 감동이 되었다:


언제 어떤 경우든, 박사는 우리에게 정답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뭐라 대답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보다 머리를 쥐어짜다 못해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때 그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리고 그 실수에서 원래의 문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면 한층 더 기뻐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알아내지 못할 때면, 정당한 실수에 대한 독자적인 감각을 발휘해 우리에게 보다 큰 자신감을 안겨주었다.(6-7쪽)

박사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그의 정신세계는 사실 너무 이상적이다. 어쩌면 작가의 이상향이고 이 책에 열광한 사람들의 ‘로망’ 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에 하나 이상적인 사람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나’처럼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우선 외모 너머에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 이전에 9명의 가사도우미가 박사의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는 것으로 '나'의 특별함을 부각한다.


영혼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지혜에 더하여 그녀는 삶에 대한 훌륭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있었고, 가사도우미로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었고, 혼자서 아들을 밝은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애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지혜롭고 겸손하고 따듯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인인 박사를 진심을 다해 보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우정은 박사가 요양원에 입원하여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80분 밖에 기억 못 하는 박사이기 때문에 그녀는 만날 때마다 그 만남에 진심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박사의 기억력이 80분짜리라는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늘 새로 만난 것처럼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