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부엌! 저자는 그들의 부엌을 "사람의" 부엌이라 불렀다.
저자는 냉장고가 발달하기 전의 음식물 저장법을 찾아 서유럽, 남미 등지에 있는 가정들을 방문했다. 그곳의 안주인들은 넉넉한 가슴과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부엌을 지키고 있었다. 냉장고에 의존하지 않은 식재료가 넘치고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 그곳은 확실히 "사람의" 부엌이었다.
‘사람의 부엌’이 소개하고 있는 음식 저장법은 주로 서구의 것들이다. 저자가 이태리 남자와 결혼하고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했으니 이태리와 네덜란드가 중심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가 음식 저장을 위한 디자인과 연관 지어 ‘냉장고 없는 부엌’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였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음식물 저장 방법에 대한 글을 저자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써놓았다. 그래서 쉽고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한 번 손에 들면 계속 읽게 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따뜻할 뿐만 아니라 총체적이다. 그러한 저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내게 그 대상과의 대화이다. 궁금한 것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의 일부이며 내 생활 대부분의 것들이 자연 현상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있던 자리를 본래 모습 그대로 돌려놓고 떠나는 것이 대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 표시라 믿는다.(12-13쪽)
저자는 음식 재료 하나하나가 모두 생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 생명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점과 생명을 지닌 것이라서 냉장고 없이도 저장할 수 있는 방법들이 꽤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유리병에 물을 담아 포도송이 가지를 꽂아 창고에 두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두면 몇 달이고 포도를 신선하게 먹을 수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만들기 시작한 것이 토마토 주스이다. ‘파사타’라고 불리는 이태리 토마토소스를 만드는 방법에서 힌트를 받은 것인데, 완숙 토마토 껍질을 벗긴 다음 물 없이 약한 불에 끓인 후 설탕을 넣고 갈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잘 마셨다. 베테랑 주부에게는 토마토 주스 만드는 법쯤이야 이미 꾀고 있겠지만 부실 주부인 내게는 책을 통해 얻은 정보의 즐거운 응용이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식품 저장에 대한 사람들의 지혜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것이다. 냉장고의 편리함에 깊숙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는 왜 이러한 책을 썼을까? 그렇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마음의 산물이다. 인류가 편리함을 추구하고 편리함이 돈이 되는 세상이 낳은 지구의 문제들을 직시하며 제품을 디자인하는 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고민의 열매를 나눠주고 있는데 소비자인 우리들은 그 열매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