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머리가 시원해졌던 책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함께 이 책을 읽었던 한 학생은 자신의 인생의 책을 만났다고 했다.) 바로 ‘공부의 배신’이다.
'공부의 배신'은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논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우리의 교육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하는 교육 시스템”이나 “스펙 경쟁”이라는 키워드가 너무 익숙해서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성장 중인 청년들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만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대놓고 너는 실패자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만난 학생의 큰아버지가 바로 그런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의사인 그는 다양한 대학을 다니는 조카들 앞에서 소위 탑 3에 속하지 않는 대학은 “쓰레기”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고 했다.
광기 어린 “스펙 경쟁”의 경우 저자는 주된 원인으로 “특권을 세습하려는 엘리트의 이기심”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이기심의 막강한 후원을 받아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저자는 “똑똑한 양 excellent sheep”(이것이 이 책의 원제이다)이라고 부른다. 주어진 일은 똑 부러지게 잘 하지만 주도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일 것이다. 이러한 “똑똑한 양”들이 지도층이 되었을 때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과 느낌도 경험이다. 자신의 욕구에만 주목해 온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할까?
저자는 멕시코 만에서 기름이 유출됐을 때 사고를 일으킨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오직 자신만을 걱정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미국의 지배층은 국민에게 등을 돌렸다.... 이들의 논리는 똑같다. 모두 자신만 안다.”라고 일축한다.
그래서 저자는 대학이 해야 할 일을 누누이 강조한다. 바로 자기 성찰 능력과 주체적인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을 엄격하게, 즉 정확하고 끈기 있으며 책임감 있고 단호하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만족으로 얻을 수 없는 두 가지 행복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이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주체적인 사고가 뒤따라야 하고, 삶의 의미를 통해 충만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자아가 비로소 다른 자아와 제대로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특히 그런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이렇게 이 책을 소개하는 데는 그러한 바램이 깔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