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고전이었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에 나온 책이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2018년에 PBS(미국 공영방송)가 선정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1위로 뽑힌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읽은 영문기사에 이 책의 중심인물인 애티커스가 인용되었었다. 제목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읽은 적이 없어서 책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1962년에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았다. (그레고리 펙이 애티커스 역을 맡았다.)
영화를 보고 우선 세 가지가 무척 인상 깊었다. 내레이터인 만 6살의 여자아이인 스카웃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를 깔고 앉아 두들겨 패는 장면, 철저한 은둔자인 옆집 아저씨 부 래들리와 스카웃 남매의 인간적인 관계, 그리고 마을의 보안관이 부 래들리(아무 해가 없는 새인 앵무새가 상징하는 인물이다)가 이 남매의 생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살인을 조용히 덮어 버리는 영화의 끝 장면이다. 영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은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이 책은 1930년대 중반 미국의 남부 소도시가 배경이다. 무고하게 강간죄로 기소된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애티커스)와 스카웃 남매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흥미진진해서 약간 두께가 있는 책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책은 인종차별과 관련한 백인들의 위선과 독선을 다룬 책으로 유명하고, 변호사인 애티커스의 정의로운 모습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회자되어 왔다. 애티커스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칙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몸소 구현해 보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아이들에게도 흑인을 속이는 것은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나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애티커스는 시민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도 이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아이들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람으로서의 기본적 자세를 하나하나 일러준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관심 있는 주제로 말하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엄할 때는 아주 단호하지만, 남매에게 늘 책을 읽어주고 잘 놀아주며 아이들의 어떤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해준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티커스는 살해당할 위기에서 구출되어 혼수상태인 아들 젬의 머리맡에서 젬의 책을 집어 들어 읽어준다. 옆에서 듣고있던 스카웃이 어느새 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안아서 방으로 데려가는 동안 스카웃이 비몽사몽간에 책에 대해서 아는 체하며 종알댄다. 아버지에게 안겨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대는 딸의 모습은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애티커스는 밤새 아들 방에서 아들을 지킨다.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튼튼한 사랑의 둥지였다.
이외에 이 소설이 주는 묘미는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유머 감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젬은 무시무시한 괴담의 주인공인 부 래들리(그는 백인이다)의 집을 엿보기 위해서 그 집 마당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부 래들리에게 잡혀서 죽음을 당하면 내일부터 나는 영원히 학교로부터 방학이니까 좋은 거야.”라고. 또한 앞집에 사는 미망인인 모디 아줌마는 그녀의 집이 불에 타버린 것을 걱정하는 스카웃 남매에게 “외양간 같은 집이 싫어서 감옥에만 가지 않는다면 불을 지르고 싶었던 적이 아주 많았단다.”라고 대답한다. 항상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애티커스 역시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이 책에 그려지는 정의감, 가족 간의 사랑과 이웃 간의 우정, 그리고 그들의 유머가 이 겨울을 훈훈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