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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Sep 02. 2023

못다 핀 그러나 눈부신 꽃 한 송이

영화 '박열'의 후미코 가네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주인공보다는 서브남이나 서브녀에게 더 끌릴 때가 있다. 영화 ‘박열’이 그랬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주인공인 박열보다는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에게 꽂혔다. 충동적인 성격의 나는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후미코의 옥중 수기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더 스토리)를 대출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23살의 젊은이가 썼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후미코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무정부주의자였다. 하지만 이 수기는 그녀의 정치적 사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박열을 만나게 되는 시점까지의 삶을 들려준다.


그는 수기 첫머리에 이렇게 적는다.


나는 무엇보다 많은 부모들이 이것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뿐만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 사상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한다. (17 쪽)


후미코 아버지는 어머니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 후미코는 ‘무적자’였다. 그래서 그는 제때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지 못했고 겨우 들어간 학교에서도 차별의 대상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이후에 처제와 살기 위해 후미코와 어머니를 떠난다. 어머니는 다른 남성들과 동거를 하면서 후미코를 열악한 환경에 몰아넣었고 결국 재혼을 위해 그를 친정집에 맡긴다. 그러나 그곧바로 양녀가 되기 위해 조선에 사는 고모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7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고모와 친할머니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자 양녀를 삼는 대신 식모로 부리면서 심한 학대는 물론 툭하면 굶기고 행동의 자유마저 빼앗아 버린다. 너무 힘든 나머지 그는 자살까지 하려 했었다.


16살이 되던 해 후미코는 외할머니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돌아온 에게 자격도 없는 아버지는 또다시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승려인 외삼촌의 재산을 노리고 후미코도 모르게 그를 외삼촌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약속을 한다. 다행히 이 일은 무산된다.


이런 후미코와 같은 삶을 살게 되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대체로 우리는 비뚤어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미코도 이렇게 말한다.


사랑받지 못하고 구박받았기 때문에 비뚤어진 것이다. 일체의 자유를 빼앗기고 억눌렸기에 뒤틀려버린 것이다.... 나도 역시 심하게 학대받은 끝에 비뚤어지고 비뚤어져서.... (146 쪽)


스스로 비뚤어졌다는 말은 자살을 생각했던 자신의 정신 상태나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을 해하는 비뚤어짐은 아니다.(후미코는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조선의 독립을 옹호하는 사람이었으니 물론 일본에서 보았을 때는 "해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받는 삶을 산 사람이 모두 비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론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지닐 수는 있을지언정 오히려 역경을 에너지 아 자신을 성장시킨다. 동시에 삶에 대한 커다란 통찰을 발전시킨다. 바로 후미코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확실하게 의 말을 들어보자.


태어날 때부터 나는 불행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언제나 학대를 받았다. 나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과거의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도, 외삼촌 이모에게도, 아니 나를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지 않게 하고 가는 곳마다 생활의 모든 범위에서 괴롭힐 만큼 괴롭혀준 나의 전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나 외삼촌 이모 집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컸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고 경멸하는 그런 사람들의 사상이나 성격이나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나 자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은 덕에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출처: 나무위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통찰의 열매인 그의 수기에 대한 일본 철학자의 평을 들어보자.


중대한 사상이 정규 교육제도 안에서 근면한 학습을 통해서만 세워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는 누군가 대신 써준 위서처럼 보일 것이다. 누가 써주었는가 하면 일본의 국가가 쓰게 한 것이고 국가에 대해 혼자 맞선 그녀가 이 수기를 쓴 것이다. (쓰루미 슌스케, 출처: 나무위키)


후미코는 척박한 환경에 싹을 틔우고 자라난 우람한 한 그루의 나무 같다. 불의에 맞서는 그의 영혼의 단단함, 삶에 대한 그의 미친 통찰, 자신의 사상을 만들기까지 있었던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했다)이 나를 눈부시게 한다. 그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았을까? 옥중에서 사망하기 전에 수기를 남겨 후대의 우리들에게 이렇게 큰 영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너무 이른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오래오래 살아서 조선이 해방되는 것도 보고, 훌륭한 그의 DNA를 물려받은 후손도 남기고, 더 큰 나무가 되어 오래오래 우리에게 희망의 그늘이 되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 강인한 여성 / 파울라 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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