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움. 그것에 대하여...

by 북마니

경이로움이라는 단어는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 경이롭다라는 말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놀랍고 신기한 데가 있다’ 라는 뜻으로 놀라움과 신기함이 결합된 의미로 예상치 못한 대단한 일이나 광경을 보았을때 감탄하며 사용한다.


캐나다에서 록키 산을 처음으로 방문했을때 ‘전 세상을 통 틀어 가장 큰 돌이 산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보아왔던 산들과는 다른 형상의 록키산의 모습을 보았을때 “경이롭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서 바로 본 지구의 모습은 경이롭다’ 라는 표현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처럼 ‘경이롭다’라는 표현은 주로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환경에 비유하여 쓰이며 사람에게는 잘 쓰이지 않는다. 이 단어는 웅대한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것이고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나의 마음을 되돌려, 사람도 경이로울수 있다고 느끼게 한 영상이 하나 있었다.


중국 광저우에 사는 한 남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이미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결심한다. 이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면 더 큰 아픔으로 평생을 슬퍼할줄 알면서도 이 남자는 그 길을 택했다. 결국 그의 아내는 암이 재발하여 몇 번의 큰 수술을 받으며 식물 인간이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이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면 정상인으로 돌아올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몇 달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한때 품었던 희망은 점점 절망이 되고, 한때는 사랑했지만 이제는 식물과 다름없는 사람이 점점 짐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의료인의 충고와 결정을 따른다. 그것이 부정할수 없는 대부분의 현실이다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이 선택하는 현실을 거스르는 결정을 하였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선고와 함께 감당할수 없이 늘어나는 병원비로 인해, 남편은 아내를 집으로 옮긴다. 병원에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는데 집으로 옮긴다한들 뚜렷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와 그의 아이는 그녀의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녀는 점점 혼수상태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를 병원으로 다시 옮겼다. 그녀는 이미 혼수상태로 기계에 의존하여 목숨만 보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 앞에서 매일 춤을 추고 노래 하였다. 아이돌이 추는 멋진 춤도 아닌, 아무런 규칙도 반짝임도 없는 막춤이었다. 때론 그의 아이도 그의 옆에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였다. 그의 아내가 듣고 있는 지, 보고 있는 지 알수 없었지만, 그는 웃으면서 바보스러운 막춤과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울고 있었을 것이다. 여보 제발 일어나서 우리 가족에게 돌아와줘 라고 절규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이 감동하였던걸까? 아니면 아내 역시 남편과 아이들을 뒤에 두고 그 길을 갈수 없었던 것일까? 남편이 매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지 3개월 후에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아내가 정신을 차리고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아내는 그렇게 회복이 되어 이제는 걷고 말하고 가족과 생활하고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돌 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아이는 이제 서 너 살은 됨직해 보인다. 엄마의 곁을 걸어다니면서 엄마가 가족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도 엄마를 마음껏 느끼고 있다.


어느새인가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나 쉽고 흔하게 사용되어 버려 그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I love it! 이라고 아무것에나 붙여 말하는 그 사랑이라는 말과 죽음으로 향하던 그녀의 발길을 돌리던 남편의 사랑을 같은것으로 동일시 할수 있을까?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성경 말씀 속 사랑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낸 남편의 사랑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jiBmDHg7W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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