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내 뇌가 억지로 발달되었네요

by 북마니

내가 수강하고 있는 심리학 수업의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는 Child development의 내용 중 하나는 뇌 발달에 관한 부분이다. 공부를 하다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붙잡은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Increased influence of the frontal regions of the cerebral cortex over the limbic system 즉 대뇌피질이 발달하며 변연계에 영향을 주며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뇌발달과 뇌과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감정과 관련된 뇌는 파충류의 뇌, 즉 편도체가 들어있는 변연계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편도체가 안정되고 좋은 쪽으로 발전한다면 불안과 감정에 대한 조절능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나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감정 조절 능력의 핵심은 변연계 자체의 변화보다는 전두엽을 포함한 대뇌피질이 변연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즉 감정을 만들어 내는 뇌보다 그 감정을 조율하고 해석하는 뇌의 발달이 감정 조절보다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나는 거꾸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감정 조절 능력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대뇌피질이 성숙하지 않은 아이가 혼자 억지로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내여야 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대뇌피질발달 ---> 감정조절의 원리를 거꾸로 적용하여 감정조절-----> 대뇌피질의 발달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걸까? 만일 이렇게 해석이 된다면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대뇌피질이 발달된 지능이 높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조금은 웃기고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감정을 혼자 속으로 삼키고 조절해야만 했다 나 자신의 감정도 처리하기에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감정과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해주어야 하는 위로자였다. 나의 감정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이해하고 조정하여 주는 역할을 하니, 당연히 전전두엽과 대뇌피질이 더욱 발달되어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혹시 하는 어나더 레벨의 똑똑함 대신에 내가 얻은 것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 울면 내가 너무 약한 사람 같았다. 참으면 돼지, 그런 걸로 울면 뭐 하나..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는 힘든 엄마에게 나만 기뻐할 일이 생긴 것 같았고 그것은 죄책감을 낳았다. 좋은 점도 있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성숙해 보였다. 무슨 일이 생겨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떠올려내어 곧 문제들을 풀어내었다. 그게 시간 낭비하지 않는 최고의 효율을 가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세부 터인가 감정이 올라오면 불안해졌다. 사실 불안이 기본으로 세팅된 환경과 그것에 따른 마음가짐으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더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감정에 관한 불안은 이러했다.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면,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이게 맞는 감정과 기분인지 확실하지 않았고 그 알 수 없는 모호함은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렇게 감정들을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잡동사니 쌓아놓든 쌓아놓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날은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다 거꾸로 뒤집어져서 내 마음속을 헤집어 놓고 폭발하였다. 내가 혹시 정신이 나간 다이너마이트 같은 사람인가 라는 생각은 때때로 나를 한없이 깊은 우울함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처럼 감정을 차단하고 억압해 온 사람들의 전전두엽이 발전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방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대신 그 감정을 감시하고 눌러버리는 경찰 같은 엄함 관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사라진 내면의 보이스는 사실 나 자신이었다. 감정을 억압하고 관리하며, 나를 더 더 밀어붙이는 무서운 사감선생님이나 무서운 엄마 같은 내면의 목소리는 나를 언제나 더 완벽하게 일을 해내게 만드는 가시 박힌 채찍과 같았다.


그러면 나와 같은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사실은 자기가 조숙함을 강요당했고 억지로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대뇌피질이 발달하여서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고 컨트롤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태껏 잘 숨기고 억누르고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야 할까?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며, 그 기적의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위해 소모하는 삶을 이제는 멈추고 싶다. 그것은 이기적으로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더 이상 내 감정을 희생해서 주변을 안정시키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나는 이제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오랫동안 나는 성숙해 보이는 법을 배웠지만, 느끼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곧 감정 조절이라고 믿었고, 울지 않는 것이 강함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생존이었다는 것을. 남은 삶에서 나는 더 이상 조숙한 아이로 살지 않기로 한다. 느끼고, 흔들리고, 때로는 감정 앞에서 서툴러도 괜찮은 평범한 어른으로 살고 싶다. 나 자신의 감정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제야 선택한 진짜 성장이다.



나는 아주 늦게, 그러나 분명하게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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