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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Mar 04. 2023

심리학과 나온 공무원, 심리검사 받다

TCI 검사 및 상담 후기

"심리학과 출신 공무원의 심리학 이야기"라는 매거진을 새로 개설했습니다.


심리학과에 대한 자랑을 하나 하자면, 심리학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편향)과 행동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아요. 심리학 지식이 개인의 삶, 그리고 사회생활에 있어 적응적인(adaptive-심리학과에서 특히 많이 쓰는 표현 같아요)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심리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꼭 심리학과 학생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저 또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항상 궁금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나를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요새 MBTI에 관심이 많죠. 새로 사람을 만나면 흔히 "MBTI가 어떻게 되세요?"부터 물어봅니다. MBTI도 재미있는 검사이고 좋은 대화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학계나 임상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검사는 아니라고 해요. 그래서 상담센터에서 하는 정식 성격검사를 받아 보고 싶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학교 상담센터에 가서, 수업에서 들어 봤던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성격검사로 착각하고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검사를 다 하고 상담 선생님께 설명을 들으러 갔는데, MMPI는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센터에 방문한 사람들의 정신과적 상태(우울, 불안 등)를 잘 나타내 주는 검사여서 제가 생각했던 검사와는 거리가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MMPI의 지표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많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성격이 궁금한 거라면 나중에 TCI 검사를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빠서였는지 결국 못 해보고 지나갔었어요.


요새 들어 또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부청사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전국 정부청사에서는 공무원을 위한 상담센터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센터에서는 다양한 심리검사 및 해석, 상담을 제공해 주신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TCI 검사를 신청해서 모바일로 검사를 하고, 상담 예약을 잡아서 결과를 들으러 갔습니다.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개인의 기질 및 성격을 보여 주는 검사입니다. 성격이야 환경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질은 사람이 타고 태어난 형질을 말하기 때문에 잘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최근에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시다면 위에 말씀드렸던 MMPI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TCI검사를 하면서 MMPI 검사도 같이 받았는데, 이번에도 유의미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MMPI는 우울, 불안, 반사회성과 같은 지표들을 체계적으로 검출해 주는데요, 학계와 임상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 왔으며, 실제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검사이기도 합니다.


TCI 검사 결과 분류되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크게 기질 4항목, 성격 3항목으로 나눠져 있죠. 인간의 기질을 자극추구/위험회피/사회적 민감성/인내력의 4가지로 분류한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래 그림은 샘플이고 제 검사결과가 아닙니다)

TCI의 검사 항목(샘플) - 출처 : (주)마음사랑 홈페이지


저는 자극추구와 사회적 민감성이 유의미하게 높고(백분위 70 이상), 위험 회피와 인내력은 중간보다 약간 낮은 편(백분위 30~50 사이)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각종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잘 불안해하지 않는 편이지만, 눈치를 많이 보고 수줍은 편인데 제가 아는 저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본인의 기질과 성격을 알고 있으면 '적응적인'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왠지 요즘 들어 인생이 쳐지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면, 괜히 스스로나 환경을 탓하는 대신 본인의 기질에 비추어 왜 그런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죠. '나는 자극추구 기질이 높은 사람인데 인생에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 우울한가 보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 볼까?'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위에 나온 8가지 기질과 성격 항목 아래 29개의 하위 항목들이 있어서, 각 항목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질과 성격의 하위 항목 - 출처 : (주)마음사랑 홈페이지


상담 선생님께서 요소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세상에 어디서 이렇게 오랜 시간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겠어요.

선생님께서 제게 자기 자신이 누군지 잘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원하는 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고 왔습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간 건 아니지만, 생각지 않았던 선물을 받고 나온 기분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청사에 좋은 상담센터가 있는데,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때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게 아쉽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상담센터나 정신과에 접근하기까지 심리적인 문턱이 있다고 하죠. 심리학과를 졸업한 저도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더 이용하기 힘들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최재천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라는 글을 읽고 공감했던 적이 있었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이해할수록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심리검사와 해석 상담을 받은 건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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