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오늘은 기록할 가치가 있는 하루였다. 강사료도 안 주는 강의 지원 오라고 해서 불평하긴 했지만, 막상 가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하루.
용산구 후암동. 서울 한복판에 그런 별세계가 있다는 걸 그곳에 안 가본 사람들은 짐작이나 할까? 아침에 일찍 도착해서 들렀던 지저스 커피 창 밖으로 본 풍경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풍경 같았다. 이제 추억만 남아 있을 주한미군 막사와 푸른 하늘, 담벼락 아래를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교육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자리는 아니었고, 토론식 수업이라 교육생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만 하면 되었다. 다들 똑똑하고 친절하신 분들이라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본 선배님과 해방촌에 가서 잊지 못할 점심시간을 보냈다.
해방촌, 그 동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3년 전 1월, 그때 나는 해방촌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점심 먹고 들어오면서 함께했던 친구들을 보며, 아 지금 정말 행복하다, 하고 느꼈던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날의 햇살도, 쌀쌀했지만 맑았던 공기도. 왜 유독 그 순간이 기억에 남을까. 그때 정말 오랜만에, '받아들여지는 기분'을 느껴서였을까? 계속된 인간관계에서의 실패 끝에, 정말 오랜만에 느낀 받아들여지는 기분, 소속감, 그 느낌이 너무 달콤해서 기억에 남았을까.
어제도 꼭 그랬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올라가다가 어떤 이상한 계단길로 내려갔는데, 그 곳이 신흥시장이었다. 그런 데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정말 특별했던 느낌의 시장. 언젠가 보았던 톨레도의 골목길 같기도 했고, 1880년대 파리의 골목길 같기도 했던.
점심으로 먹었던 솥밥은 무난한 정도였지만 점심 먹고 들렀던 카페 '업스탠딩'은 환상적이었다. 장소의 특색을 잘 살린 아찔한 나선형의 계단, 장소와 너무나 잘 어울렸던 사장님의 스타일, 인테리어, 그리고 '매직' 커피까지. 분명 우유인데 아인슈페너 같은 느낌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산미 있는 원두에 과일향. 커피 내리기 전에 원두 시향까지 도와주시던 친절한 서비스까지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건 그곳에서 나눴던 대화였다. 내가 회사에서 본 사람 중 제일 가는 이상주의자 선배님. 나랑은 너무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관심있는 주제는 비슷하다. 선배님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고,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르게 만든다.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선배님은 내가 언제 행복하냐고 물었다. 이거 제일 좋아하는 대화 주제인데.
선배님은 깊은 고민 끝에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감각적인 즐거움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때 행복하고, 새롭고 멋진 장소에 갔을 때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역시 본인과는 다르다고 느끼시는 것 같았다. 본인이 MBTI 극 N이어서 그렇다고 하셨는데, S N 반반이지만 살짝 S가 더 높은 나로서는 사실 잘 이해가 안 갔고, 그래서 놀랐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구나, 사람은 이렇게 다양하구나. 다시 한 번 느꼈던 하루.
하지만 선배님, 언제 행복하냐는 말에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질 것 같아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지만, 나에게 행복은 바로 그 순간이었는 걸요. 아름다운 햇살, 완전히 새로운 장소, 완벽한 커피와 흥미로운 대화. 그 이상으로 나에게 행복을 주는 건 없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