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몸에는 접힌 자국이 있다

삶에 관한 단상

by 무소의 뿔

낯선 타자의 심연으로 들어가기를 나는 기꺼이 자처한다.

깊숙이 잊혀진 몸, 말해지지 못한 마음들의 모서리에는 접힌 자국이 있다. 무수한 자국으로 새겨진 슬픔. 사람이라는 짧은 단어는 그 무수한 자국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끌어온다. 그의 접힌 자국을 따라 나의 접힌 자국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다만 그의 고통으로부터 나의 고통을 길어내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너와 나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이다.


근원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온갖 후회와 걱정,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 그것이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실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위로받는다. 그곳에서 나와 너의 몸은 둘이 아니고, 그러므로 나와 너는 더 이상 구별되지 않기에.


그곳에서 마주하는 헐벗은 몸이 우리의 실체이자 본질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지금을 구성하므로 나의 전부를 구성하는 것. 오랜 자국으로 남겨진 상처와 말들. 아주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멸종했다고 오인된 개체들.


우리는 서로의 접힌 자국을 더듬으며, 이제는 그들을 칭할 단어조자 절멸해 버린 세계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과 얼굴을 부여한다. 그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그리움에 있다. 나에게 멀리 있는 것, 혹은 나에게 멀어져 버린 것. 막연하게 동경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어떤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일부였던 과거를 생생히 확신하는.


어른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질수록 서로의 배를 가르는 일이 어색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두렵다. 이러다 다시는 배를 가를 수 없을 정도로 나의 피부가 단단해지면 어쩌나, 그 어떤 중장비를 가져와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굳어버리면 어쩌나.


단 하나의 깊이 있는 관계는 두 사람 모두의 생애를 뒤바꿀 힘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배를 갈라 꺼내어줄 용기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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