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관한 단상
좋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이야기, 곧 공백이 있는 이야기다. 좋은 이야기는 무언가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하나의 장면을 우리의 눈앞에 보여준다. 그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해 그 공백을 채우도록 유도하고, 그 결과 우리는 공백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곳에서 이야기는 무수한 가지를 뻗는다. 인간의 뇌는 어딘가 비어있는 정보를 인식하면 본능적으로 그 공백을 메꾸려 하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는 그 공백의 간격을 적절히 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로 좋은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발생시킨다.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는 책 속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다. 그 이후 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바로 그 지점이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좋은 이야기는 결말과 동시에 끝나지 않는다. 독자의 마음 한편에 남아 계속해서 그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게끔 한다. 때문에 좋은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다. 결말 이후의 세계는 모든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새롭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복합적이고 다양한 층위의 인물이 필요하고, 그런 인물을 위해선 모든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아주 단순하다. 더 정확하게는 단순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그들 자체로써 이야기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단순함의 이면에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그리고 그 직감은 다시 그 인물을 복합적이고 다양한 층위의 인물로 되돌려 놓는다.
이처럼 인물 역시 이야기와 같은 성질을 가진다. 좋은 인물은 설명되지 않고, 끝나지 않는다. 좋은 인물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이야기 속에 존재하고,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무수한 해석의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한다. 요약하자면, 좋은 이야기란 한 마디로 설명되지 않기에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좋은 이야기를 위해선 좋은 인물이 필요하다. 좋은 인물 역시 한 마디로 설명되지 않기에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저 너머의 세계, 저 너머의 인류, 저 너머의 사랑을 상상하고, 지향하도록 한다.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삶,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는 우리를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