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굴레에 갇혀있을 우리에게

삶에 관한 단상

by 무소의 뿔

노력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노력한 것이 아니고, 괴롭지 않으면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의문은 언제나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로 이어졌다.

내게 최선과 노력은 사력을 다해 일을 끝마친 후 그 자리에 쓰러져 헉헉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이미지다. 탈진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힘을 쥐어짜 내는 것의 반복.


이게 정말 최선이고 노력일까? 그저 자기 학대와 자기 착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고통 = 성장이라는 공식은 나의 뇌에 너무나 깊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어쩌면 노력은 고통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통스럽지 않게 노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고통이 반드시 성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또 모든 성장이 반드시 고통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그저 무의미한 고통으로 끝나거나 눈에 띌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이 그저 단순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노력이 고통스러워야 하고, 고통스러워야 노력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고통에 대한 강박을 낳는다. 그 강박으로 인해 나는 부담을 느끼고 결국 왜 고통스럽지 않으냐고 자책한다. 결국 학대와 착취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통스럽지 않아도 된다. 굳이 너 자신을 고통의 늪으로 끌어들이지 마라. 고통에 집착하지 마라.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지 마라.


성장은 고통이 아닌 사랑에서 비롯된다.


너를 사랑하고, 네가 이루려는 그 무언가를 사랑하라.

네가 해내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것에 자책하기보다

네가 해낸 것, 네가 이루어 낸 것을 칭찬하고 사랑하라.


고통의 굴레에 갇히지 마라.

더 넓고 크게 너를 바라보라.

욕망하지 말고 집착하지 마라.


욕망과 집착은 강박과 불안을 낳기 마련이다.

아무 감정도,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네가 해야 할 것을 해라.

너는 이 몸이 아니고 이 마음도 아님을 꼭 기억하라.

언젠가 또다시 고통의 굴레에 갇혀 있을 나를 위해 이 글을 적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24년 8월에 적었던 글이다. 입시 실기를 두 달 정도 남겨놓은 때라고 기억한다. 한창 자책과 후회와 자기혐오에 빠져있을 때였다. 매일 밤마다 나는 왜 더 노력하지 못하는지를 고민했다. 왜 고통스럽지 않으냐고 자책하며 기어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고통스러워야만 내가 잘하고 있다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매일 왜 그만큼 간절하지 않은 건지, 왜 자꾸만 도망치는지, 정말 하고 싶은 게 맞는지 자문했다. 항상 부족했고, 항상 더 노력해야 했고, 항상 완벽해야 했고, 항상 잘해야 했고, 항상 무언가를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많이 해야 했다. 오늘 하기로 계획한 일을 끝마치고 나서도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해했고, 쉬면서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라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왜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했을까.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왜 그때의 나는 그토록 괴롭게 나를 채찍질하며 살았을까.

마음은 습관과 같은 것이어서, 나도 모르게 또다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시 나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우고, 고통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면서 '성장은 고통으로부터 비롯된다'라니.

왜 나는 나에게 고통을 선물해 주면서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걸까. 애써 선물하지 않아도 고통은 내게 올 것이고, 나는 싫든 좋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왜 거기에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조건까지 추가해 놓은 걸까. 왜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을까.

성장은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리고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만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고통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고통받는 나를 사랑하려는 내가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다. 나까지 그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말자.

3년 전, 2년 전에 내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다시 원을 그리며 내게 돌아오고 있다. 같은 문장에서 다른 문장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이 되는 거라고. 모든 문장에서 다른 문장을 발견하고 있다.

불안하다는 건 내가 잘 가고 있다는 뜻이다. 불안은 오직 변화하고 있을 때만 찾아온다.

오늘도 잘하고 있다. 오늘도 살아있느라 고생했다. 더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 오늘 네가 무엇을 했든 전부 다 잘했다. 더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한다.

언젠가 또다시 고통의 굴레에 갇혀있을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이 글을 적는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은 다만 체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