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에 대한 고민의 흔적

-실전무용

by 코르테오

가끔씩 춤이 이렇게 대중과 친숙해지게 된 것에 감탄할 때가 있다. 케이팝 아이돌의 신곡 안무에 맞춰 '챌린지'를 하는 일반인들도 많고, 다양한 춤과 안무에 대해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어난 모습이 괄목하다. 10년 전 케케이블 음악 방송 Mnet(엠넷)에서 '댄싱 9'이라는 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하는 걸 본 나로서는 그때의 춤의 부흥과 지금이 상전벽해할 정도로 달라졌다는 게 체감될 정도다. 그 당시에도 다양한 춤에 대한 관심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지금처럼 하나의 트렌드로서 작용하지 않고, 작은 부흥정도만 일어나고 사그라졌다. 그 모습을 알기에 지금처럼 안무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댄스나 무용을 어린이만 다니지 않고, 성인들도 취미로 배우게 된 건 내가 바랬던 모습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춤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무용가들의 고찰을 직접적으로 만나봤기 때문이다.

4년 전, 회사에 사진 여러 장 인쇄를 맡긴 의뢰자가 있었다. 조금은 큰 사이즈의 사진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근육질의 인물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굉장히 생소한 모습이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마침 의뢰자가 직접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전시를 하시는 건지 묻게 되었다. 그의 대답은 무용에 대한 사진전이라고 답했었다.

신기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하더라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해결을 되었지만 외부 활동이 지금처럼 많은 때도 아니었고, '스트리트우먼 파이터' 시즌 1이 방영되고 조금씩 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올라오던 시기였다. 심지어 관심의 대상인 스트리트 댄스가 아닌 그 바깥에 영역에서 대중과 동떨어진 현대무용이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주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기대를 하게 되었고, 나는 그들의 전시 날짜에 맞춰 마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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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진행한 전시는 처음부터 강렬했다. 한쪽 벽에 빔 프로젝터로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 화면을 띄워져 있었다. 그 방송에서는 전시의 주체인 무용가들이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챌린지를 하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빔 프로젝트 근처에는 컴퓨터 키보드가 있었는데 전시를 참관객이 직접 그들에게 채팅을 칠 수 있게 하여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했다.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그들의 절실한 상황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라이브 방송을 뒤에는 춤을 찍은 사진들이 쭉 전시가 되어있었다. 각각의 사진들은 주제에 맞춘 무용을 담은 영상의 한 부분들이었다. 비트코인, 주식, 노출, 챌린지, 관종, 랜덤 채팅 등 대중뿐만 아니라 인터넷 유저들이 관심 가는 분야들을 무용으로 풀어낸 그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해도 관심을 못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

전시의 마지막은 인터뷰 영상이었다. 무용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 제작자들과의 대담이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처럼 그들도 현실과 고군분투 중이었다. 어떻게 하면 무용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다양한 시도와 고민들을 토로했다. 그들은 미래가 밝지 않음에도 자신들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려는 의지가 확실했다.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와 이 전시에 참여한 무용 크리에이터를 보며 존경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놓았었다. 언젠가 그들이 대중에게 알려질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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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Mnet은 무용을 주제로 한 '스테이지 파이터'를 론칭했다. 그리고 나는 기억 한 구석에 담아놓았던 이름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썬캡보이' 최종인과 최호종. 춤이 트렌드가 된 시대에서 오랫동안 끊을 놓지 않고 달려온 그들을 방송에서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과거 그들이 고민했던 대중과의 만남 그리고 무용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음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스테이지 파이터'를 끝까지 시청을 했었다. 존경했던 그들이 훨훨 무대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말이다.

춤의 시대는 왔지만 무용은 그 혜택의 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무용은 대중과의 거리는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돈도 안 되는 거 왜 하느냐고. 나 또한 그런 말에 상처받고 접은 꿈들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냉철한 비판에서도 끊임없이 고찰했고, 어떻게든 발버둥 쳤었다. 끊임없이 움직였던 그들은 판을 뒤엎고 세상 밖으로 증명했다. 4년 전 그 전시가 잊히지 않은 이유는 멈추지 않고 도전했던 고민의 흔적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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