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미 부자인 이유

by 코르테오

오늘 들은 음악에 대한 내 의견에 마침표를 찍는다. 새로운 취미인 음악 신보를 듣고 감상문 쓰기를 한지 이제 1년이 되어간다. 취미가 음악 청취였으나,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기록으로 남기고자 시작한 게 몸에 붙어가고 있다. 취미가 여러 가지이지만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즐기는 중이다. 이런 나를 보는 선생님께서는 ‘이러니 네가 연애를 못 하는 거야’라고 핀잔을 주신다. 머쓱하게 틀린 말이 아님을 인정한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나는 왜 이렇게 취미 부자인 걸까? 어느새 많아진 나의 애호하는 것들. 그 근원을 찾아보기 위해 어린 시절의 나를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음악은 어머니가 처음 ‘마이클 잭슨’을 보여주신 이후로 ‘해외 팝’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기준이 될 정도로 어머니는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다. 카세트테이프, CD, LP 그리고 MP3 등 어머니는 음악을 듣는 방식도 여러 가지셨다. 음악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것저것 경험해 보게 해 주셨다. 박물관 보러 가기, 체스 수업, 연극 또는 영화 감상 등 문화생활을 우리 남매와 함께 해주셨다. 특히 나는 어머니가 학업적 자유를 주셨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까지도 공부에 몰입하는 일은 적었다. 등한시하지 않았지만, 만화도 보고, 게임도 하며 내 취미를 꾸준히 유지를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러한 경험들이 더 살을 붙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버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의 폭이 점점 늘어났다. 베이스 기타를 사러 낙원상가를 가보거나, 유럽 배낭여행을 해보거나, 원데이 클래스에 가보기 등 관심이 생기는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최종적으로 전시 보러 가기, 스포츠팀 시청, 컴퓨터 게임, 음악 청취, 독서, 영화 감상, 요리하기가 오랫동안 진행하는 취미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결국 이 모든 건 어머니가 주신 영향을 내가 직접 실천에 옮기고, 그런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타인에 기인한 것이 아닌 나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내 취미는 사회적 허세나, 강박이 아니다.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고 해 보는 것. 다양한 경험을 좋아하는 내가 만든 습관들이다. 취미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나는 오히려 취미 부자가 아닌 사람이었을 것이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는 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한 즐거움.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삶이 힘들어도 버티게 만드는 요소들이기에 사회적 관점에서 해야 할 것들을 놓치게 하는 것 같다. 독립, 연애, 노후 준비 등 마음속으로는 해야지 하면서도 제대로 실천을 못 하고 있다. 막연하게 꿈으로서 바라고는 있지만 이제는 그런 불평불만을 해도 나라는 본질은 여전히 미래보다 경험을 더 선호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하나씩 사회적 실천들을 하며 나아가는 취미 부자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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