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누나랑 배낭여행을 했다. 20대 초반의 두 청춘이 낯선 타국을 두 달간 여행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응원을 해주셨다. 넓은 세상에 나가서 많은 경험을 하길 원하셨다. 오히려 격려받았음에도 나는 불안에 떨었다. 혹여나 안 좋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아버지는 철저히 준비만 하면 괜찮을거라고 하셨다. 다행히 당신 말대로 우리 남매는 무사히 유럽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아버지가 해외여행을 가시게 됐다. 가족 없이 떠나는 첫 여행이다. 가족끼리 갈 땐, 누나와 내가 대부분 준비를 해서 불편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가 혼자(친구분들과 가는 거지만) 준비해야 해서 어떤 게 필요하고,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계속 되물었다. 물가에 나간 아이 같은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자 자정 넘도록 질문에 답했고, 가방을 뒤엎고 다시 싸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잠을 잤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나갈 채비를 하고 아버지를 깨웠다. 옷을 갈아입으시는 동안 먼저 짐을 챙기고 차에 실어 놓고 대기했다. 허겁지겁 나오시는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한다. 가면서도 못 챙긴 건 없는지 계속 묻는다. 지갑을 안 챙기고, 돈과 카드를 복대에 넣고 다닌다고 하신다. 이해가 안 되어서 잔소리하려다 빠르게 포기했다. 아버지의 고집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는 걸 알아서다.
20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두 부자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요즘 바쁘게 회사에 다녀서 아버지와 얘기할 시간도 없고, 서로 감정 상하는 일로 다투다 보니 대화를 나눌 일이 적어졌다.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가 좋아했던 여행, 앞으로의 일에 관해 얘기했다. 얼마 만인 걸까? 재밌는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부슬비가 내린 새벽 터미널 앞에서 우리 부자는 포옹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즐겁게 지내기를,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사랑을 전했다. 방긋 웃으시며 터미널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끝까지 봤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10일이지만 아버지가 많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주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오늘 SNS로 유럽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셨다. 바티칸을 기다리는 긴 대기 줄 앞에서 웃고 계신다. 아버지가 꼭 보길 바랐던 곳에 가셔서 즐겁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걱정 한숨을 덜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나를 응원했는데,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응원한다. 멋진 추억을 담고 오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