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일 <크메르 문자 기행>
나는 만화 보는 걸 좋아한다.
가독성이 좋고, 무엇보다 그림의 향연은
텍스트로 읽어 상상하는 것보다
좀 더 현실성이 있고, 현장감이 있다.
닐 게이먼의 <샌드맨 시리즈>를 읽던 중
정말 뜬금없이 우리나라의 만화 화형식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건전한 내용을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폭력, 마약, 살인, 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너무 사실적이라 내 안의 선비다움이 꿈틀한 것 같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는 밀수, 탈세, 마약, 도박, 폭력과 더불어
만화를 '사회 6대 악' 중 하나로 선언하고,
한국아동만화자율회를 통해 엄격하게 규제한다.
사실 말이 무섭지 과하게 말하면
고지식한 어른들이 공부 말고 다른 데에
정신 팔린 어린이들을 못마땅해하는 모습이다.
한국 만화는 서서히 자신만의 모습을 찾아가던 도중
권력 앞에 무릎을 꿇려야 했고,
지독한 자기 검열과 더불어서
반달리즘의 극치인
만화책 화형식을 어린이를 위한 날인
어린이날에 치욕을 맞이한다.
박정희 사후에도 만화는 꾸준히 검열을 받아왔지만
'보물섬'과 같은 출판 만화 잡지를 통해
자생력을 갖추게 되었고,
웹툰 시장을 통해 다시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0년의 세월은
대한민국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그림체, 필체를 잃어버리고
만화 강국 스타일을 따라 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만화가가 돈을 벌 방법이고,
대중들은 그러한 그림체에 이미 알음알음 적응했었다.
현재 만화가들에게 대한민국 만화만의 개성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추측한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한국 만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이 전성기인가? 아니면 또 다른 마지막일까?
알 수 없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발전할 뿐이다.
만화의 뿌리도 찾기 힘든데
캄보디아는 자신들의 문자를 찾을 수 없다.
폴 포트의 대량 학살로
지식인들은 전멸했고,
그들이 쌓은 모든 지식의 원천인
책은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캄보디아의 국립도서관은
우리나라 일개 '동'에서 운영되는 도서관 규모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크메르 어 서적은
지극히 빈약하다.
이에 따라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글자를 쓸 수 없게 되었고,
무엇보다 문맹률이 현저하게 떨어져
책에 관한 관심이 적어졌고
낙후된 출판 문화를 갖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한 현실에 처한 캄보디아.
똑같은 독재의 시기
한국은 만화를 잃어버렸고
캄보디아는 언어와 문자를 잃어버렸다.
두 문화 모두 값지고 소중하지만
내 말이 사라지는 것이 슬픔의 무게가 더해진다.
커다란 권력 앞에서
반달리즘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꺾어버리는 행위이다.
고유함.
타인은 다가가기 힘들고,
자국민에게 힘의 원천이 되는 그런 문화를 지키지 못한다면
성장 원동력은 그 시점에서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