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걸레로 대형 프린터들을 닦으며 오늘의 염원을 전달한다. 매일 부탁의 말 걸기를 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됐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오늘 하루도 잘 버티기를 기원하는 응원의 한 방식이다.
프린트 매니저, 인쇄기로 그림이나 사진을 출력하고, 검수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덧 3년째에 접어드는 내 직업이다. 프린트 매니저를 하면서 제일 신경을 쓰는 것은 출력되어 나온 결과물을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린터들이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유지 및 관리하는 것이 먼저다.
일반적으로 인쇄소에서 쓰이는 장비들은 고가에 최첨단의 장비이지만 가장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예민함. 까딱 잘못 쓰면 금방 고장이 나거나, 관리를 잘못하면 출력할 때 이상 현상이 금방 나온다. 예를 들어 잉크가 튄다던가, 색이 잘못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늘 연습 인쇄를 해서 출력이 잘 나오는지 확인도 하고, 청소를 잘해 줘야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유지가 된다.
처음에 이 직업을 갖게 되고 대표님께서 유지와 보수에 크게 당부하셔서 지금도 이 부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매일 하는 루틴이 작업실 및 프린트 청소를 매일하고 있다. 솔직히 귀찮은 마음이 매번 들지만 내 업무이고, 프린트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무생물인 프린터에게 정성을 다해 청소를 하면서 나는 매번 그들에게 부탁과 격려의 말 걸기를 한다. 기계에 영혼이 있듯이 대해주면 그들도 나의 부름에 응답을 잘해주는 것 같다. 말을 안 걸어주면 서운하다는 듯이 내 마음대로 출력이 안 되는 일을 몇 번 경험을 해서 잘 달래주어야 한다. 애인도 사귀어본 적 없는 모태 솔로이지만 여자 친구를 대하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본다.
3년간 매번 무탈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프린터와의 말 걸기는 언제나 성공적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겨보자’라는 격려를 알아들은 걸까? 최근에는 제때 갈아줘야 할 곳을 알려줘서 고맙다. 장비를 교체할 때마다 다시 프린터에게 말을 건다.
‘알려줘서 고마워.’
몸과 입에 예절을 주입해 주시는 프린터 덕분에 오늘도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