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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르테오 Jun 08. 2024

투쟁의 시간

 어느 날 대학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교에서 내가 전공한 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지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그에게 후배들을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었고, 함께 분노했다. 전화를 끊고 일을 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속이 풀리지 않았다. 학과를 살리기 위해 싸워 온 내 투쟁의 시간이 부정당해서였다.


  2013년, 신입생이던 나는 선배들에게 이끌려 학교에 저항해야 했다. 몇 안 되는 학과에 주어진 교직 이수가 내가 입학한 날부터 폐지 조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뭣도 모르고 학교 광장에서 다른 학과 학우분들과 목소리를 높여 투쟁의 목소리를 냈다. 미션 스쿨이던 학교 예배 시간에는 교수님들이 학교 고위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셨다. 학교와 학과 사이의 정치 싸움은 입학부터 시작이 되었다.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복학했지만, 여전히 학과의 생존은 위태위태했다. 점진적으로 신입생 수를 줄여왔고, 인문학과 전체를 통폐합하려고 계획했다. 학생들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일을 벌이는 총장과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학생들과 학생회를 피했다. 결국 학생들은 총장실 앞을 점거했다.

 

 빠져나올 구멍도 찾기 힘든 총장은 제발 나가게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학생들은 닫힌 문을 향해 대화하기를 요청했다. 계속되는 대화 거부에 슬슬 짜증이 올라왔고, 순간 교섭을 위해 문을 살짝 열게 된 고위 간부의 실수에 그대로 힘을 몰아붙여서 총장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토록 원했던 총장과의 만남은 서로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뤄졌다. 총장은 자신의 억지와 거짓말을 이어 나갔지만, 학생들의 분노를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앞으로 학생회와 계속해서 만나기로 구두 약속을 했다. 하지만 학생회를 경찰에 신고한 총장의 행태에 깨지게 되었지만 보다 못한 학교 이사회에서 제재함으로써 폭거는 수그러들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학과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되었다. 당시 IT 스타트업에 일하게 되면서 학업과 생업을 같이 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졸업한 친한 선배와의 전화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학과는 인문학부로 통폐합하게 되었고, 전체 인문학부 수업을 듣고 그 안에서 학과를 고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안타까운 현실에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 깊은 회의감을 들었다. 내가 아는 건실한 어른들은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자리를 위해 젊은이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철없는 이들만이 높은 위치에 공고히 자리 유지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다녔던 학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예정이다. 모집 중지 안건은 조용히 통과되었다. 대학의 선택에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열렬히 학과를 사랑했던 나의 감정은 슬픔만이 가득 찼다. 학생과 학교의 진영싸움에서 정치라는 걸 처음 겪어본 나로서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같이 함께했던 나와 학우들의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거웠음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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