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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by 코르테오

맏이인 누나와는 다르게 나는 학원 선택이 자유로웠다. 어머니는 둘째인 내게는 원하는 학원에 다닐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중학생 때 실용 음악학원에 다녔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음악 듣는 것도 좋아했고, 당시에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부천역 근처에 있는 학원에 등록해 배우기 시작했다.


작곡 수업은 MIDI(미디)라는 음악 소프트웨어로 배웠고, 젊은 남자 선생님께서 나를 봐주셨다. 컴퓨터에서 내가 생각하는 음이 그대로 나오니 희열을 느꼈다. 뭔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작곡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늘 내게 틀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나는 오케스트라 음악과 동인 음악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작곡하는 곡도 웅장하고, 현악기를 많이 넣었다. 작곡한 노래를 들어보면 나는 만족스럽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매우 형편없는 초보적인 음악이었다. 그는 나에게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에서 벗어난 노래를 작곡하라고 권유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대중 노래를 작곡하라고 해서 불만스러웠지만 막상 도전을 하니 너무 어려웠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 노래 안에 있는 여러 요소에 감탄하게 되고, 오히려 그런 곡을 통해서 새로운 발상을 깨치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학원을 그만두고 개인 작업실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와 인연을 유지하고 싶어서 그가 제안한 대로 망원동 그의 작업실에 가서 레슨을 받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반 중학생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작업실은 지하에 있었고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재밌게 수업했다. 오히려 학원보다 자유로웠다. 그를 통해 작곡도 배웠지만 음악계의 이면도 많이 들었다. 실제로 그때 들었던 문제 있던 가수 중 하나는 나중에 뉴스에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이후 높은 레슨비로 인해 우리 인연은 얼마 못 가게 되었지만,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다가 그마저도 드문드문해졌다. 이후 10년이 지나 그 사람이 생각나게 된 건 글쓰기 때문이다. 내 안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책방 사장님은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주제로 글 쓰는 걸 추천했다. 그대로 행동하니 지금은 양질의 에세이를 쓰게 됐다. 돌이켜보니 선생님의 조언과 그 시절 젊은 작곡가의 조언이 일맥상통함을 느낀다. 그런 자유로운 발상과 배움이 창작의 중요한 과정이구나 싶다.

최근에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 들을 때 곡에 중요한 멜로디보다는 뒤를 받쳐주는 음을 듣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배운, 하나의 노래가 갖고 있는 여러 요소를 듣는 버릇 때문이다. 덕분에 가끔 음악 관련 칼럼을 쓰거나 내 평을 쓸 때 어떤 면이 좋았는지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그가 가끔 보고 싶어 진다. 우물 안이 아닌 우물 밖의 다양한 것을 경험해 보라고 조언하며 음악을 가르쳐주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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