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감정적으로 올라오는 공간을 회피한다. 공감하는 시간이지만 나는 그런 상황 자체를 꺼린다. 요즘 말처럼 ‘너 T냐?’라고 질문이 들어오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감정이 풍부한 F다. 왜 그가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따라서 거기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연도 목표가 서행구간에서 눈물 흘리기가 된 것은 그만큼 스스로 감정에 몰입한 적이 없다는 증거다. 그런 순간이 다가올지 의심했지만, 그 상황은 목표를 삼은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찾아왔다.
매주 화요일은 글쓰기 수업이 있지만 회사에 다녀서 참여할 수 없어 매번 혼자 주말에 선생님과 수업을 갖는다. 1대 1 수업의 매력도 있지만 다 같이 모여 속마음을 털어내는 모둠 수업이 그리워서 공휴일이 화요일이길 빈 적도 있다. 기도에 답을 주셨는지 올해 추석은 화요일이었다. 손꼽아 기다린 시간이었기 때문에 숙제도 열심히 하고, 잘 차려입고 책방으로 향했다.
그날의 독서 모임은 독특했다. 책방의 수학 선생님의 후배가 같이 모임을 하러 오셨다. 그래서 여성분들이 많았던 모임에 남녀 비율이 딱 떨어지는 흔치 않은 조합이 완성되었다. 글쓰기 모임의 주제 책인 ‘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을 읽고 얘기를 나눌 주제는 ‘후회’이었다. 키워드가 선정이 된 순간,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고, 추억을 못 쌓은 게 아쉬웠던 시간이 너무 많아서였다. 추억에 잠기며 모임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경청했다.
선생님의 후배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하셨다. 소아마비였던 자신, 그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을 말하시다 울컥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현실과 싸웠던 그가 진정한 나를 알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와서 후회스럽다고 했다. 중년의 그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며 마음이 동했다. 다른 선생님께서 부모님 얘기를 하시니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회한을 푸시니 나도 내 얘기를 덧붙이려고 입을 열었다.
‘억울하실 것 같아요.’
말 한마디를 열고 다음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목으로 울음을 토해냈다. 메말랐던 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뿜어냈었다. 치매로 인해 자기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어머니가 너무 안타까웠다. 어머니가 치료받고 죽으시는 과정이 주마등으로 스쳐 가니 마음속으로 닫아놨던 슬픔이 터져 나왔다.
한 번 울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의 몰입이었다. 늘 감정에 회피했었는데 진정으로 몰입하고 나니 걱정이 하나 사라졌다. 내가 감정에 메마른 로봇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나는 결국 상대방을 공감할 수 없는 걸까 자책했었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 만난 내 감정을 통해 나는 타인이 보는 앞에서도 온 마음을 당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공감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 안에 있는 방어 기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일을 하면서 느낀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용심처럼 타인의 얘기에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진정으로 감정에 몰입한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것이 아닌 공간에 상관없이 나와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