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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르테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사람들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사교성이 세상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성대로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공동체에 끌려가거나, 동참하는 건 구시대다웠다. 나는 나고, 너는 너. 개인의 취향과 성격을 존중하는 삶이 옳은 사회라고 굳게 믿었다. 비록 내가 사람과 대화하기 어렵고, 친구를 만들기 싫은 건 내가 가진 단점 중 하나일 뿐이지 그게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세상을 향해 벽을 쌓아갔다.


퇴촌으로 이사한 후, 내 생각은 변함은 없었지만, 어딘가 계속 불편했다. 아버지의 회사 사람들과 만나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방 안에 틀어박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독점해도 마음속 답답함은 도무지 없어지지 않았다. 문득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내가 타인과 대화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퇴촌면에서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찾는 건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보다 어려워 보였다. 스스로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은 점점 자신을 어둡게 만들어갔다.


서행구간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담을 쌓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과 말이 공격적이고, 수동적임을 알게 되었다. 집에 있는 사진첩에서는 늘 웃는 상이 었던 내가 감정이 없어졌고, 교회에 친구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사성이 밝던 내가 대화를 잘 못 하게 되었다. 비루한 자신을 만나니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이렇게 비사회화된 내가 세상과 친해지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 벽을 허물지 않으면 다시 벽 뒤로 숨어 퇴화된 내가 되기 싫었다.


많은 책을 읽고, 내 마음에 있는 생각을 글로 쓰고, 여러 모임에 자주 참석해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스로 벽을 쌓아 올린 내가 바보였음을. 미리 한계를 그어놓고 신 포도처럼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사회라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된 부분을 마주하고, 고치기를 소망하며 행동하니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찾아온 새로운 변화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게 되었다.


퇴촌에 온 지 4년이 지났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70% 정도 변해있다. 바뀌지 않은 부분은 스스로 쌓인 벽에 의해 생긴 습관과 생각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혹시나 모를 걱정, 사회에 대한 분노, 이성과의 사랑에 대한 무관심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아쉬운 부분들을 벽을 세워 피하기보다는 나라는 존재가 가진 단점임을 인정하고 바꿔나가야 하는 요소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용기를 가지기 위해 마음속의 장벽을 내 손으로 깨기 위해 오늘도 나는 서행구간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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