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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by 코르테오

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밤하늘 아래, 나는 3명의 호주인과 같이 밖에서 노숙하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우리 네 명은 어떤 소음도 없이 고요함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낭만. 그게 여행의 묘미이지만 이상하게 나는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해 지는 해변을 걷기, 숲에서 식사하기 등 우리는 자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꿈꾸고는 한다. 낭만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소망은 마음속 버킷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나 또한 그랬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로맨틱한 자연에서의 경험이 생각보다 별로인 적이 많았다. 해지는 해변은 춥고, 모래바람에 눈이 따가웠고, 숲에서 식사할 땐 조명을 보고 온 벌레들이 말 그대로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이었지만 언젠가는 아름다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며 밤을 보내기가 그랬었다.


2019년 11월, 나는 사막의 별을 보러 북인도 자이살메르로 향했다. 고요한 사막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사막 사파리로 유명한 곳이다. 자이살메르로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는 갖춰놨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평이 좋은 곳을 알아봤고,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대로 예약했다. 사막 사파리 당일, 나는 3명의 호주인과 함께 지프를 타고 광야로 향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본 이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가이드들은 야외에 침낭과 이불을 펼쳐주었다. 저녁까지 먹은 후,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그날 밤은 절대 잊히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구가 구의 형태임을 잊을 정도로 밤하늘은 도화지처럼 펼쳐져 있었고, 별들이 수를 놓았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니 이번만큼은 정말 낭만적인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슬슬 눈이 감기던 그때, 뺨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였다. 건조함 밖에 없는 사막에 여우비가 솔솔 내리던 것이었다. 금방 그칠 거로 생각했던 비는 잠에 방해가 될 정도로 나를 귀찮게 굴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내 침낭을 갖고 가이드가 자는 창고로 들어갔다. 비는 피할 수 있었지만 먼지가 가득한 창고는 숨을 쉬기 힘들었다. 어느 정도 먼지에 적응했다고 생각하고 눈을 붙였지만 이번엔 모기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잠을 설치다 보니 어느새 밤은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자연과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지만, 징크스는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여러모로 아쉬웠던 그날 밤이었다.

독서 모임을 중에 ‘한국의 명수필 2’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는 나처럼 자이살메르에서 별을 보신 정경 작가님의 수필이 있었다. 작가님이 겪은 그날 밤은 하늘의 기막힌 아름다움과 순수에 대한 감격으로 눈에 눈물이 흐르셨다. 그 대목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했지만, 작가님과 나의 상반된 그날 밤. 자연과 함께하는 낭만적 상황에 대한 희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니 아이러니함이 느껴졌다. 나는 과연 자연과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또다시 마음속에 버킷리스트가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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