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운드 조난까지 17일 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고, 쉽게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생판 처음 보는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이고, 신뢰를 바라야 하는지 어려운 현실이다. 남을 믿기 어려운 것이 오래된 격언에서부터 나온 일이지만 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걸 부탁하는 일은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쉬운 부탁이다.
관광지에서 사진 찍기는 그 시점의 나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순간이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났을 때, 현시점을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내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디를 갔었는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과거 추억에 너무 젖어드는 건 문제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꼭짓점이 되는 잊지 못할 순간이다. 단순히 한국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도 하는 행위이고, 다들 존중을 해준다.
흥미로운 건 사진을 찍는 주체가 그곳을 간 나 또는 가족, 친구 등 나를 비롯한 동행인이 카메라를 들지만 때로는 그걸 옆에 있는 현지인이나, 같은 관광지에 놀러 온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일면식도 없는 남에게 자신의 최고의 순간을 찍어달라니.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불확실한 상황은 온전히 남에게 맡긴다. 재밌게도 사진을 찍어주는 타인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순간을 담아준다. 상호 신뢰가 꽃피는 상황이다. 아쉽게 찍히는 경우도 있지만 다들 웃고 넘어간다. 분명히 내가 찍혔고, 그 어떤 대가도 없이 감사의 인사를 나눌 뿐이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나 또한 해외 여행지를 가서 외국인에게 사진을 경험이 많다. 대부분 잘 찍어준 경험이 많아서 핸드폰 카메라를 넘겨주는데 크게 걱정은 없다. 하지만 인도에 가서는 범세계적 약속이 깨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인도 여행 중 자마 마스지드라는 이슬람 사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타지마할을 지었던 샤 자한의 마지막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하고 갔다. 시끄러운 델리에서 자마 마스지드를 들어오니 마치 내가 인도에 온 것 같지 않은 고요함이 가득했다. 생소한 분위기였지만 성스러운 곳에 온 듯한 경건함을 주는 자마 마스지드는 정말 아름다웠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 모스크 내부로 들어왔다. 내부에는 기도를 하는 무슬림도 있었지만 자신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도 있었다. 나 또한 예배당 내부를 사진을 찍으며 자마 마스지드 구석구석을 담아놨다. 그러던 중 뒤에 있던 인도 현지인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선뜻 제의를 했다. 그의 호의에 감사해서 핸드폰을 주고 포즈를 취했다. 열심히 찍어줘서 결과물이 살짝 기대가 했었는데 직접 본 사진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두운 회랑에서 나를 포커싱 하지 않고, 대충 찍은 티가 너무 났다. 동서남북을 돌며 찍은 의미가 너무 없어서 그에게 한 소리를 하려 했는데 오히려 그가 손을 내밀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사진 찍어준 값을 달라는 거였다. 인류애가 박살 나는 상황이다. 먼 타국에 와서 여행에 대한 로망이 가득 찼지만 기운이 뚝 떨어지는 그의 행동에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더 견디기 싫어서 소량의 돈을 주고 나는 사원을 나왔다. 성스럽고, 좋은 기억만 가득하고 싶던 공간이 혐오가 확 차오르니 벗어나고 싶었다.
이 날 이후로, 여행에 대한 급격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런 간단한 것 마저 불신이 쌓이니 차마 쉬운 부탁도 말하기 어려워졌다. 상대편이 호의를 보여도 그것이 돈을 받기 위한 포석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더 맞닥뜨렸다. 여행이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왜 이 여행을 하게 됐는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다행히 여행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찾았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타인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보편적인 도덕과 예의는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가 달라도 신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벼운 부탁도 자신의 이권으로 쓰게 되면 불신은 사회를 망가뜨리게 된다. 어떤 이는 말한다. 그것은 소수라고. 하지만 표본이 적더라도 그 영향은 나비효과처럼 불어나게 된다. 내겐 인도 여행은 타인에게도 권하고 싶은 여행지이지만 그곳에 겪은 불신의 사례들 때문에라도 강력히 추천하기 어렵다. 그날의 사진은 지금도 간직해 가지는 이유는 아픈 기억이라도 나 자신을 위한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지우지 않고 있다. 자그마한 신뢰가 크진 않더라도 세포처럼 연결된 큰 신뢰를 만든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