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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기억

by 코르테오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여름 때마다 해수욕장에 갔었다. 늘 갔던 곳은 충남 태안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꽃지해수욕장은 높은 해안사구로 유명했다. 높은 모래와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해안은 지금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하면 텐트를 쳤다. 해변 하면 늘 텐트가 떠오르는 건 만드는 재미도 있었지만 완성되고 나서 그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자는 것도 좋았기 때문이다. 입으로 열심히 튜브에 공기를 넣으면 놀 준비는 끝이다. 썰물 때는 펄에서 조개나 게를 열심히 잡고, 민물 때는 열심히 수영하며 보내면 해는 어둑어둑해진다. 저녁은 언제나 간이 버너로 밥과 고기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부모님 품에 잠을 자면 가족 여름휴가는 마무리가 된다.


바다는 언제나 여름의 한 부분처럼 함께였다. 친척들과 함께 보내기도 하고, 꽃지가 아닌 다른 해수욕장을 가기도 했고, 새하얀 모래를 처음 본 필리핀 보라카이 섬에서도 해변이 없는 여름은 없었다. 하지만 나와 바다는 점점 멀어져 갔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름방학 시간도 줄어들면서 바다를 갈 시간이 줄어들었다. 끈적한 습기와 해충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실내가 좋아졌다. 자연과 함께하던 여름은 점점 수영장이나, 호텔처럼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가끔 바다 근처에 가긴 했지만, 시원하게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줄었다. 어느새 바다는 여름이라는 이미지와 점점 멀어져 갔다.


온 국민이 집에 꼼짝없이 묶여야 했던 코로나 시절. 내 삶에 자연은 더욱 가까워졌다. 앞에도 산, 뒤에도 산, 가운데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지만 마음속 답답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청량감이 필요했다. 탄산음료에서 맛볼 수 있는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자연에서 느끼고 싶었다. 산 정상에 오르고, 저수지를 보러 나가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평선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시원함이 간절했다. 깊게 잊고 있었던 해변이 그리웠다.


차를 몰아 남해 면으로 향했다.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뜨거운 햇살이 나를 반겼다. 왠지 모르게 빨리 바다가 보고 싶어 걸음이 빨라졌다. 숲을 벗어나니 탁 트인 모래사장과 하늘색 바다가 보였다. 순간 어린 시절 바다를 보며 느낀 마음속 끓어오름이 주체를 못 할 정도로 터져 나왔다. 아, 나는 이 광경을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꿈처럼 쫓고 싶던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발을 바닷속에 담그니 여름의 열기도 씻은 듯이 날아갈 정도로 차가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찾은 해변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기 위해서.


곧 다가오는 여름, 나는 다시 해변을 찾으러 간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한 부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추억과 더불어 어른이 되어 무뎌져 가는 감각을, 바다를 통해 다시 깨어나는 것 같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반응을 하고,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그대로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잃어버린 여름의 한 부분을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의 해변의 기억을 쌓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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