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빈번히 나오는 뉴스가 있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페달을 잘 못 밟아서 급발진하는 사고가 많아졌다는 거다. 그들은 변명을 일삼는다. 자동차가 갑자기 그랬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진상을 들여다보면 페달을 잘못 밟거나, 핸들을 사람이 없는 쪽으로 돌리지 못해서였다. 사고로 인해 허망하게 간 생명의 사연에 가여운 마음이 든다. 정부에서는 나이가 들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중이지만 큰 성과를 못 내고 있다.
한때, 나는 인지능력이 부족한 노인은 빨리 운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주 운전과 마찬가지로 위험하게 사람 목숨을 노리기 때문이다. 내가 늙으면 집에서 책을 읽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내가 차를 직접 운전을 해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넓어지고, 근거리를 이동해도 간편한 걸 못 하니 답답했다. 걷는 행위는 나이가 들수록 지치고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3시간 걸어도 문제없던 다리와 발이 이제는 1시간만 걸어도 발바닥이 고통을 호소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여러 번의 환승과 주행 시간은 지루하고, 몸이 지쳤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해도 사람이 붐비거나, 서서 이동할 때는 그만큼 번거로운 행위도 없었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한숨을 내쉰다. 차를 이용했다면 쉽게 왔을 텐데라고 후회를 느낀다.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건 빠른 이동을 통해 얻는 자유로운 시간과 휴식에 반비례한다.
여행하면서 더욱 나는 운전을 손에 뗄 수 없음을 느낀다. 이전에는 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곳도 장시간 운전을 해서 도착을 하면 피로가 싹 풀렸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그곳에서 새로운 발견과 경험이 나를 더 성장시킴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나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면 매우 좌절할 것 같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쉬이 운전면허증을 내지 못하는 건 자의로서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젠가 자율주행이 시대가 온다면 좋겠지만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늙어도 안전 운전할 수 있는 삶. 이런 꿈을 원하는 건 내가 아직은 사회 구성원 또는 한 인간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증표와 같다. 조금씩 반응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올곧게 운전할 수만 있다면 나의 노년은 행복할 것 같다. 누군가 얘기한 것처럼 남과 나눌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 노력하면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고 한다. 배우자와 자녀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내 몸과 마음이 꾸준히 운전할 수 있길 바란다.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내가 운전할 수 있도록 온전한 신체와 정신이 유지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