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셔도 조금만 참으세요.’
초저주파 치료기가 오른발에 갖다 댄 순간, 간호사의 조언을 들을 여유 따윈 없었다. 너무 아파서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오른발 근육의 파손 정도가 심했음을 뇌까지 전달할 정도로 찌릿찌릿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다 나왔다. 왼발을 도와주기 위해 부담을 오롯이 받아들인 오른발을 그날 처음 몸소 체험했었다. 책임 전가했던 나의 왼발에 대해 알게 된 첫날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다리가 휘어지진 않았다. 초등학생 때, 다리가 바깥으로 휘었다는 걸 알고 부모님께서 많은 돈을 쓰시며 교정하려고 애쓰셨다. 하지만 어린 내가 교정기로 차고 자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교정은 금방 막을 내렸다. 다리가 휜 상태였지만 삶을 살면서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 오히려 왼발을 잘 써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2002년 월드컵을 보며 주발인 오른발 말고도 왼발로도 잘 차고 싶은 마음에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연습했었다.
연습의 효과는 크게 나아지는 일이 없었다. 왼발로 공을 차려고 하면 슛 폼도 이상하게 잡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실제 경기를 할 때, 위급한 상황에서는 왼발이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부담이 컸었다. 익숙한 오른발로 무언가를 하기 편했다. 왼발의 쓰임새는 점점 적어져 갔지만 일상 생활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아쉬움은 없었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내 발이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상하게 오른발 신발이 금방 해졌다. 처음엔 군대 전투화가 그랬었고, 복학 후, 대학을 다닐 때도 신발 등, 칼라 쪽이 금방 벗겨지면서 신발 뼈대가 내 발꿈치에 상처를 냈다. 왼발은 크게 문제는 없었다. 문제를 찾던 중 지인들이 모두 걷는 게 이상하다는 말을 해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리 교정 병원에 진단을 받아봤다. 결과는 역시나 휜 다리가 발바닥과 걸음걸이에 문제를 주고 있었고, 두 발이 불균형하게 힘을 받았었다. 병원에서는 교정 치료와 함께 저주파 치료를 같이하는 걸 추천했다. 빠른 문제해결을 위해 큰돈을 지불을 했다.
교정 치료 이전 발 근육 피로를 먼저 풀기 위해서 저주파 치료를 먼저 했다. 그리고 그날의 아픔을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왼발은 오른발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다리 밸런스를 위해 집에서도 밤낮으로 교정 운동을 하고, 저주파 치료를 받고, 신발에 늘 교정 깔창을 깔고 다녔다. 다행히 처음 문제 됐을 때보다 좋게 교정이 되어서 오른발에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저주파 치료를 할 때마다 고통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아픔을 삼키며 왼발과 오른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예전보다는 중심은 잡혔지만, 교정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교정 깔창을 신고 생활을 한다. 깔창을 신지 않으면 발에 부담이 많이 가게 되어서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최근 오랜만에 교정 병원에 다녀왔는데 깔창을 습관화한 덕분에 물리치료나 저주파까지 안 해도 될 만큼 악화되진 않았다. 나의 왼발은 큰 도움은 되지는 못했지만, 교정과 함께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된 애증의 대상이다. 신경 쓰는 만큼 오른발과 균형을 이룬 지금이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슬쩍 운동화의 칼라가 균등하게 해진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나의 왼발이 정상적으로 일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