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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Feb 28. 2022

설치 미술

무명 작가들은 도로에 거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주말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요금소를 통과하기 전부터 거북이걸음이다. 몇 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의 그리움이 큰 탓에 더 답답하다. 하행선은 주차장으로 변한 지 오랜 듯하다. 무슨 이유인지? 도로 정체는 자주 겪던 일이라 느긋하게 마음을 다잡아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자라목 내밀 듯 차창 밖으로 목을 길게 뽑아 앞뒤를 둘러본다.

                                                       

  거대한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 위에 빨강, 검정, 흰색 등 다양한 색으로 치장하고 모양, 크기도 제각각인 자동차 퍼즐로 만든 설치미술 작품이다. 직선을 기본 틀로 잡아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통하여 다양한 감정이 내재된 작품이다.

  도로 위에 전시된 작품에는 특별함이 있다. 완성된 한 가지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새로운 표현을 위해 변화를 시도한다. 움직임을 통한 새로운 구조다. 느리고 때론 빠르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공간과 형태를 바꾼다. 대형 푸른색 컨테이너 트럭이 느리게 공간을 만들면 빨간 소형 세단이 빠르게 공간을 채우는 방식의 제작기법이다. 때론 다양한 색상의 대형버스가 전용 줄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모양이 다른 자동차가 끼어들고 빠져나가 높낮이에 변화를 주어 디지털 형태의 새로운 구성을 시도한다. 기존 작품과 다른 색의 조합이 완성되고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했을까? 도로라는 공간에 각각의 작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완성된 작품에 대한 느낌을 한 가지로 이해할 순 없을 것 같다. 참여하게 된 이유와 표현 의도는 구성요소인 그들만의 몫이다. 공통의 표현 요소가 있다면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것일 것이다.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구성요소인 자동차 퍼즐 하나씩을 구분하여 표현 의도를 상상해 본다.

  독특한 표현을 시도하는 관광버스를 감상한다. 작품에 음악을 가미하여 지루함을 덜어 보겠다는 표현 요소가 눈에 띈다. 차창 커튼을 닫고, 현란한 조명을 켠다. 나이 지긋한 댄서를 출연시켜 분위기를 돋운다. 차창 밖으로 ‘비 내리는 호남선’ 선율이 유연하게 번진다.

  그 뒤에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를 넣어 담백하게 디자인한 장의차가 슬픔을 주제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표현한다. 흰색 국화꽃으로 장식한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은 어린 소년을 맨 앞자리에 앉혀 슬픔을 강조한다. 반쯤 열어놓은 차창 사이로 ‘요단강 건너가 만나 리-.’ 늘어진 테이프의 지친 듯한 찬송가가 흘러나온다. 간간이 흐느끼는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찬송가에 섞여 비감함이 더해진다.

  장의차 옆으로 붉은 장미꽃과 리본으로 장식하고, 윈도 브러시 끝에 흰 장갑을 끼워 앙증맞게 멋을 낸 흰색 컨버터블 웨딩 카가 끼어든다. 결혼식을 막 끝낸 듯 나비넥타이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핑크빛 원피스를 입은 한 쌍이 행복한 듯 키스를 한다. 영정사진을 앞에든 소년의 퉁퉁 부은 게슴츠레한 눈과 반짝이는 신부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생과 사 극적 대비를 통한 희비를 표현한다.

  도로 위 작품은 수시로 역동성을 발휘한다. 작품이 완성되었다 싶어 여유 있게 담배를 입에 물 던 흰색 승용차가 화들짝 놀란다.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성요소들이 덩달아 움직이며 새로운 표현에 동참한다. 이삼 킬로미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끼었다 빠지며 엎치락뒤치락 뒤섞이더니 멈췄다.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멈춘 채 반대편 상행 차선을 바라봤다. 고속 질주하며 다양한 색상이 섞인 컬러 스펙 드럼을 보여준다. 정지 상태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비디오 아트다.

  그걸 본 옆줄에 있던 작가는 “왜 이쪽만 막히지?” 혼자 중얼거리며 짜증을 낸다. 작품에 동참한 작가들은 절제의 미를 위해 참아야 한다며 직선을 유지한 채 기다린다. 지루한 듯 오디오 볼륨을 높이던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무리하게 이탈을 시도한다. 그걸 본 다른 작가들이 작품이 흐트러진다며 ‘빵빵’ 클랙슨을 요란스레 울려댄다. 간신히 옆으로 끼어들기에 성공한 그는 조금 전 빠져나온 곳을 뒤돌아본다. 이번엔 그쪽 차선이 앞으로 움직인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요리조리 화폭을 넓게 활용하며 미꾸라지 기법을 선보인다. 칼치기, 밀어붙이기, 쌍라이트 켜기를 반복하며 발버둥 친다.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본 요건을 지켜야 한다. 기다림과 질서다. 그 관리는 흰색과 하늘색이 적당히 혼합된 순찰차 몫이다. 눈에 잘 띄도록 위쪽에 경광등을 부착한 채 갓길로 이동하며 계도한다. 관광버스는 그를 발견하자 당황하여 소리친다. 

  “앉아, 고개 숙여” 

  당황한 댄서들은 미처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얼쭘얼쭘 좁은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쉰다. 미꾸라지처럼 작품을 흩트려놓던 빨간 스포츠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뗀 채 기다린다.

  두 시간째 변화가 없다. 속도와 위치 변경을 통해 벗어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덩치가 크다고, 빠르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작품 속 표현 요소에 지나지 않을 뿐. 설치미술 작품의 구성요소로 공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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