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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11. 2022

벤 치

제발 말 좀 들어주세요.

  생긴 것부터 우스꽝스럽다. 다리는 작달막하고 옆으로 평편하게 퍼졌다. 일 미터 남짓 키에 그나마 반은 구부정하게 휜 등받이다. 그의 친구 중엔 등받이마저 없고 길쭉하게 퍼진 녀석도 있다. 못생겼어도 소공원 터줏대감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자리 잡고 있어 밤낮으로 찾는 이가 많다. 못생겼다고 흉만 잡히는 건 아니다. 튼튼하게 잘 생겼네, 누워 한숨 자도 되겠어. 라며 칭찬하는 이도 있다. 

  벤치는 평편하게 생긴 것처럼 속도 넓다. 찾아오는 이가 누구든 거절하는 경우가 없다. 못생겼다 흉보든 말든 많은 이의 쉼터가 될 수 있다면 만족해한다.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사연이 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벤치에게 털어놓으려 온다. 힘들거나 아픈 사람, 부부 싸움하고 열 받아 뛰쳐나온 중년 남자, 말동무 없어 홀로 시간을 보내는 노인….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 고양이, 새 심지어 풀벌레까지도 찾아온다. 벤치는 모두를 받아주고 이야기도 들어준다. 동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남의 말을 잘 들었던 건 아니다. 벤치로 만들어지기 전 숲에 살 땐 수다쟁이였다. 옆 나무들과 가지를 비벼대고, 잎을 흔들며 수다를 떨고 아늘거렸다. 바람 불면 바람 따라, 비나 눈이 내릴 때도 그것에 맞춰 춤을 추며 소란을 피웠다. 

  그런 삶이 이웃에 피해가 되는 줄 몰랐다. 너무 가깝게 붙어 비비고, 제멋대로 산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 이유로 간벌을 당했다. 어느 날 기계톱이 굉음을 내더니 밑동을 가차 없이 잘랐다. 쓰러짐과 동시에 가지 잘리고 몸통도 서너 토막으로 잘려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부턴 혼자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곳에서 잘려온 통나무들과 야적장에 나란히 누웠다. 겁에 질린 듯 누구 하나 소리 내거나 움직이지 못했다. 

  며칠 후 제재소로 실려 왔다. 육중한 장비가 우악스럽게 움켜잡더니 기계톱에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각지고 반듯한 목재로 변신해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목공소로 옮겨져 처음 만난 각재들과 나란히 눕힌 채 볼트로 조여졌다. 벤치라는 이름도 그때 붙여졌다. 옆에 나란히 누운 이웃들과 비비거나 수다를 떤다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때부터 듣기만 해야 했다. 



  벤치를 찾아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쉬거나 잠을 자기도 하고, 고민이 많은 듯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학교 땡땡이친 편의점 아들 녀석이 놀다 가고, 유부남 선생님을 짝사랑한 여고생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들은 벤치를 믿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부끄러움 없이 치부를 드러내고, 거침없는 사랑도 나누고, 비밀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그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단골 중에 김 간난 할머니가 있다. 누군가를 붙잡고 며느리 험담으로 하루를 보내는 할머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 이곳에 온단다. 해가 지면 찾아오는 남자가 있다. 누더기를 몇 겹이나 입었는지 걸음걸이가 불편한 정도다. 낡은 배낭을 신줏단지 모시듯 메고 온다. 벤치 위에 자리 잡고 나면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다. 언젠가 반합에 남아있던 밥을 나눠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나비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나비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동무다.

  벤치는 이야기 들어주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귀가 두 개나 달려있고, 돈이 드는 것도,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들어준다 해도 끝까지 듣는 경우가 드물다. 중간에 끊고 말을 끼워 넣으려 한다. 말의 총량이 듣는 총량보다 적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뇌 연구자들은 인간은 일 분 동안 대략 이백 단어 정도 말하고 팔백 단어 정도 듣는다고 한다. 말 몇 마디 듣고 이해한 것으로 착각해 끝까지 듣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 공원 공사를 한다며 벤치를 철거했다. 누더기 남자가 누울 곳도, 김 간난 할머니 하소연할 곳도 사라졌다. 찾아오는 이도 없다. 어둑해지면 영문 모르는 나비 혼자 벤치 있던 자리에서 그를 기다렸다. 벤치가 사라지자 젊은이들은 말을 들어주고 고민을 털어놓을 곳을 찾아 나섰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어라운드’, ‘마리레터’, ‘감쓰’라는 블로그를 대안으로 찾아간다. 온라인상이니 무조건 들어줄 거라 믿는다. 그마저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은 더 외롭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입보다 귀라는 걸 알지 못한 탓이다. 


  모든 말을 들어주던 벤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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