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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17. 2022

관촌 여인숙

세월은 그냥 가지 않는다.

  옛 친구 몇 명이 대천항 방파제에 모였다. 오십 년 만에 만난 반백의 영철이도 있었다. 석양을 등진 어선들이 만선 깃발을 휘날리며 어항으로 들어온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서 막걸리를 따르던 영철이가 눈시울을 붉힌다. 만선 깃발 달고 들어오는 어선을 보고 ‘갈머리 포구’ 생각이 난다고 했다. 계선주에 걸터앉아 손님 기다리던 늙은 아버지, 포구에 들어오던 어선의 뱃고동 소리가 생생하다며 없어진 관촌 여인숙 이야기를 꺼냈다.

    


  “뿌우- 뿌우우”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객지 나간 아들 기다리던 어미처럼 관촌 여인숙 사람들은 부두로 뛰쳐나간다. 뱃일하는 일꾼, 빈둥대는 백수 할 것 없이 배 터로 모여들었다.  

 “간재미 배여?”, “아녀 조기 밴가벼”, “만선이래…?” 조용하던 부두가 시끌벅적 생기가 넘친다. 

  영철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인숙은 부두에서 백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관산 추정 편에 나오는 밤마다 여우가 나온다는 갈통을 묻어 놓은 갈대밭을 앞마당처럼 품고 있는 곳이다. 여인숙 손님 대부분은 어업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바다 생활로 욕정에 굶주린 뱃사람이 하루짜리 사랑을 하느라 찾아오거나 밴댕이, 아지, 간재미 등을 떼다 청양, 공주 장에 내다 파는 장사꾼들이 주요 고객이다. 더러는 장기투숙객도 있다. 부두에서 날 일로 먹고사는 뱃일 꾼 정 씨, 붉은 노을을 화폭에 담겠다며 막걸리로 하루를 보내는 화가 허 씨, 혼인하고 삼일만에 배 타고 나간 신랑 기다리는 새댁 마 씨, 빈둥대다 한마디만 꺼내면 배꼽을 빼놓는 곰 같은 구 씨. 동네방네 안 끼는 곳 없이 참견하는 감초 같은 노 씨가 그들이다. 

  이 여인숙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관촌 여인숙’이라 쓰인 낡은 간판은 바뀐 적이 없는 듯하다. 수리한 적 없어 보이는 낮고 허름한 단층집도 그대로다. 방이라고 해야 두 사람 겨우 누울 수 있는 두어 평 크기다. 부두 쪽을 향해 난 방문은 얇은 합판을 양면에 덧대고 밤색 페인트를 칠했다. 겉면에 ‘1’, ‘2’라는 숫자가 아니면 방을 구분하기 어렵다. 옆방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대부분 문을 열어놓고 산다. 갯바람이 한기를 몰고 오지 않는 한 문을 닫는 경우가 드물다. 옆방과 구분 짓는 벽체는 중간에 각재 두어 개를 세우고 합판을 붙인 다음 모란꽃 무늬 도배지를 발랐다. 옆방 손님 코 고는 소린지 옆에서 자는 사람 콧소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만 차단한 구조다. 방음 안된 벽면 탓에 옆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여인숙 내에서는 비밀이 아니다. 객실 안에는 장롱 대신 다리가 접히는 상과 그 위에 올려놓은 꽃무늬 이부자리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이불에서는 갯내음인지, 사람 냄샌지 퀴퀴한 냄새가 여인숙의 세월을 말해준다.  

   


  드문드문 페인트가 벗겨진 여인숙 간판처럼 주인인 영철이 아버지 얼굴에도 검버섯이 늘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호객행위에 나선 그는 나이도 잊은 듯하다. 읍내 여관보다 저렴하고 석양이 아름답다며 허풍을 떤다. 점점 줄어드는 손님 한 명이라도 묵어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그런데도 장기투숙객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처음 맞이하던 마음은 잊고 잡힌 고기 대하듯 알아서 묵으려니 한다. 등굣길에 여인숙을 앞을 지나며 매일 인사하는 우리에게조차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다. 그러나 아들 영철이는 달랐다. 여인숙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전해주었다. 그가 전해주는 소식 중에 침을 꼴깍 넘기며 집중해서 듣는 이야기가 있다. 젊은 뱃사람의 하룻밤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이상한 신음소리까지 흉내 내며 이야기할 땐 덩달아 아랫도리까지 반응하여 솟아올랐다.      

  장기투숙객 한 명이 민들레 홀씨 날리듯 여인숙을 떠났다. 왜 떠나는지? 영철이 아버지는 묻지 못했다. 여인숙이란 곳이 하루 이틀 묵었다 떠나는 것이 당연하나 그는 매우 섭섭해했다. 떠난 노 씨가 묵었던 5호실 문을 몇 차례 여닫으며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부자리를 보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떠난 사람에 대한 섭섭함보다 수입이 계속 줄어드는 것이 한숨의 원인이었을 거다. 

  이틀 전, 5호실을 젊은 뱃사람에게 대실 해 준 적이 있었다. 하룻밤 묵은 그는 굶주린 사자처럼 어찌나 요란하게 거친 숨과 신음을 뱉어내는지 옆방 손님들까지 덩달아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다음 날 돌아온 노 씨에게 그 방을 대실 해 주었다는 사실과 거친 신음소리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독신주의자였던 노 씨는 그 말을 전해 들으며 불결한 것이 바짓가랑이 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 같다며 징그럽답고 했단다. 옆방 사람들은 노 씨가 떠난 이유를 그쪽으로 몰아갔다. 

  그가 떠난 후 약속이나 한 듯 장기투숙객이 하나둘 떠났다. 배 일꾼마저 일이 없다며 일거리 있을 때만 왔다 갈 뿐. 묵는 경우가 드물었다. 영철이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부두에 나가 물거품만 남기고 떠나는 어선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심술부리듯 갯벌을 향해 돌을 던지곤 했다. “세상에 떠나지 않는 게 뭐가 있간디-.”투정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도 변화의 바람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계선주에 걸터앉아 궐련 담배 연기를 품어내는 날이 많았다. 

  몇 해 전부터 포구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갈머리 포구에서 송학리에 이르는 바다를 가로막는 제방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농지 확보를 위한 간척사업이라고 했다. 제방이 완성되자 포구는 빠르게 변했다. 썰물 유속이 느려져 퇴적물이 쌓이고. 수심이 낮아지자 어선이 들지 않고, 여인숙 손님도 끊겼다. 간척지 개발로 갈머리 포구는 모든 것을 잃었다. 

  관촌 여인숙도 간판은 그대로 둔 채 문을 닫았다. 주인 떠난 여인숙은 몇 해를 버티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 폐가로 변했다.



  갈머리 포구를 빼앗긴 어선들은 다른 곳을 찾아 나섰다. 넓은 바다와 만나는 포구 끝자락 신흑리가 최적지였다. 어선이 들기 시작하자 사람이 모여들고 변화가 시작됐다. 갈머리 포구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파시가 형성되고. 횟집이며 건어물 가게, 여인숙 대신 번듯한 여관도 여러 개 생겼다. 원산도, 삽시도로 가려는 관광객이 붐비고, 어판장에선 “어- 삼만, 어- 삼만 오천…”경매사의 외침이 부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세월은 그냥 가는 법이 없었다. 흘러가든 사라지든 모든 걸 변하게 했다. 머물러 있는 꼴을 용납하지 않았다. 갈머리 포구도, 관촌 여인숙도 세월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희생자다.

  훌쩍거리며 막걸리를 마셔대던 영철이도 세월을 비켜가진 못했다. 그에게서 쓰러져가던 관촌 여인숙을 붙잡고 있던 영철이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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