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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26. 2022

보이지 않는 공포

눈을 가리자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누구나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우리 뇌에는 얼굴만 전문으로 인식하는 신경세포가 있는데 보이지 않게 차단되면 무서움을 느낀다고 한다. 정보가 차단되면 불안해져 공포를 느끼는 심리상태의 결정체가 공포인 셈이다.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꿈에서도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신입사원 교육 중 겪었던 이야기다. 담력훈련을 간다고 했다. 공포를 경험하는 훈련을 담력을 기른다고 미화시켰다. 회사마다 대인 공포증을 없앤다고 명동 한복판에서 미친 듯 소리 지르고 제품 홍보를 시키는 경우가 있으나 우린 좀 달랐다. 


  군복 입고 군화까지 단단히 챙겼다. 수원 근처 정보사 훈련장에 도착했다. 지하동굴을 훈련장으로 개조한 곳이다. 무언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동기들의 말문을 막았다. 

  훈련소장은 우리를 강당으로 안내했다. 훈련개요를 설명한다고 하지만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심리전이었다. 불이 꺼지고 공포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이상한 음향이 배경으로 깔리더니 어둠을 뚫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이 입장하게 될 동굴은 출구가 단 한 개뿐입니다. 내부는 수십 갈래로 갈라져 우리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고 깊이도 알지 못합니다. 정해진 길을 찾아 나오지 못하면 죽을 수 있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한 명씩 투입되며 마지막에 자기 번호표를 찾아 나오면 훈련 종료됩니다.” 안내는 간단명료했다. 나에게 번호 3번이 부여되었다.    

  “3번” 호명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다. 조교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다음 양팔을 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테러범이 인질 눈을 가린 것처럼 공포심 극대화를 위한 조치다. 어디로 가는지, 입구가 어딘지 방향 감각을 잃어 더 불안했다. 공포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즈음 철문이 닫히면 눈가리개를 풀라 했다. 

 “삐- 이익” 괴로운 듯 철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출발” 등을 떠밀더니 “꽈와-앙-” 철문 닫히는 소리가 귀신 울음처럼 어디선가 공명 되어 되돌아온다. 암흑 속에 홀로 남겨졌다. 칠흑 같은 어둠에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깊이도 높낮이도 알 수 없다. 내리막 경사에 습기가 많아 질척거렸다. 눈을 크게 뜨고 동공을 넓혀도 어둠을 걷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살아가잖아.” 중얼거리며 두 팔로 바닥을 더듬으며 원숭이걸음으로 한 발씩 옮겼다. 십여 미터를 나아가다 “으-악” 괴성과 동시에 주저앉았다. 물컹거린 팔뚝만 한 구렁이가 손에 잡혔다. 더듬거리다 어둠 속에서 물컹거린 물체가 손에 잡혔으니 괴성은 자동발사, 당연했다. 다리가 풀려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경사진 길 끝나는 지점에 크기를 알 수 없는 물웅덩이가 나왔다. 웅덩이 위에 둥근 통나무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균형을 잡으며 중간쯤 도달했을 때 갑자기 통나무가 굴렀다. 웅덩이로 떨어져 허우적거리다 엉겁결에 빠져나왔다. 물에 빠진 생쥐가 살려고 발버둥 친 꼴이다. 

  정신 가다듬고 몇 미터 앞으로 나아갔다. 상당히 넓은 갈래 길이 나왔다. 잠시 고민하다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사람이 지나지 않은 듯 바닥이 거칠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안했다. 믿지 않았던 동굴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던 훈련소장의 말이 생각났다. 생각을 정리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문제는 어둠이다. 되돌아가나, 처음 가나 찾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길을 찾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닭 같은 동물이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놀라 넘어졌다. “꼬-옥 꼬-옥” 닭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던진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숨어있다는 건 길을 제대로 찾은 거라 확신했다.

  얼마를 왔는지,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무슨 일이 닥칠지 불안감은 가중될 뿐이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혼자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어둠에 조금 적응된 듯했다. 그때다. 희미한 조명 빛에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선혈이 낭자한 귀신이 달려들었다. 숨어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와 겁을 주고 사라졌다.

  한 시간 정도 헤맸을까 멀리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상자 같은 것이 보였다. 상자에는 손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 한 개가 뚫려있었다. 그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상자 겉면에 ‘번호표를 꺼내시오’란 흰색 글씨가 선명했다. 희미한 조명이 켜진 통 안을 들여다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통 안에는 살모사, 구렁이 같은 수십 마리의 뱀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몇 마리는 똬리를 틀고, 어떤 뱀은 뒤엉킨 뱀 사이를 느리게 헤집고 다녔다. 번호표는 뱀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상자 바닥에 있었다. 번호표를 꺼내려면 손을 넣어 뱀을 헤집어야 했다. 어릴 적 뱀을 개구리 잡듯 쉽게 죽여봤지만. 맨손으로 뱀을 헤집어 본 적은 없었다. 망설이다 뱀의 공격 상태를 시험해 봤다. 상자 안으로 손을 넣었다 빠르게 빼냈다. 두세 마리가 관심을 보이는듯하더니 잠잠했다. 흩어진 번호표를 살폈다. 7, 10, 5, 15 관련 없는 번호만 보일 뿐 내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구렁이가 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덩치 큰 구렁이는 혀만 날름거릴 뿐 움직이질 않았다. 차라리 통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면 손을 넣기가 쉬웠을 거다. 묘안이 생각났다. 벨트를 풀어 길게 잡고 구렁이를 건드렸다. 구렁이는 귀찮은 듯 대가리를 몇 번 움직이더니 똬리를 슬며시 풀었다. 3번의 번호표가 보였다. 손을 통 안으로 수차례 넣다 빼기를 반복한 후에야 꺼낼 수 있었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조교는 출구에서 번호표를 확인한 다음 문을 열어주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박수가 터지고 맥주 샤워가 뿌려졌다. 심 봉사가 처음 눈을 뜨고 세상을 맞이한 기분이다.

  훈련임을, 공포심을 느끼도록 만든 시설임을 알고 있음에도 죽음에 이를 것처럼 불안에 떨었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보이지 않음에도 공포를 느끼지 않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도 있는데 꾸며놓은 시설에서 공포를 느낀 나약함이 창피스럽다. 

  손에 잡혔던 구렁이는 바람 넣어 만든 말랑거린 고무였다는 사실을 알고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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