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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27. 2022

늦깎이 출가의 행복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그를 통해 나를 본다.

  속세 나이 56세에 출가하여 늦깎이 승려가 된 친구가 있다. 누구나 신념에 따라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은퇴하여 노년을 보내야 할 나이에 출가하는 건 특별한 경우다. 현실도피, 아니면 세상사에 대한 한풀이…. 그만의 사연이 있을 것 같다. 

  독특한 면이 있긴 했으나 엉뚱하지는 않았던 그였다.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그를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그는 강원도 영월에서 가난한 철도 역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씨름 선수를 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고. 전교 수석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서울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미아리 반지하 방 자취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상위 성적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안암동에 있는 K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초기 유도부에 들어가 어릴 적 씨름 경험을 활용했다. 유도부에 들어간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새벽 그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벌거벗긴 채 계곡에 버려져 있다는 거였다. 급하게 손에 잡히는 트레이닝 한 벌을 챙겨 들고 그를 찾아 나섰다. 알려준 대로 4.19 기념탑 버스종점에서 내려 아카데미 하우스 옆 계곡으로 올라갔다. 계곡 너럭바위에 팬티만 입고 앉아있는 모습은 참선하는 도인 같았다. 곰같이 커다란 덩치에 팬티만 입고 바위에 앉아있는 꼬락서니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

  이유인즉슨 어제 유도부 신고식 때 막걸리 한 말 마시고 뻗었는데 추워서 깨어보니 이 꼴이란다. 팬티만 입은 미친놈이라 버스도 태워주지 않고, 구멍가게 찾아가 사정했더니 문을 걸어 잠근 채 문틈으로 동전을 던져줘서 공중전화를 했단다. 선배들이 신고식 시킨다고 이곳에 버려두고 간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게 이런 일만이 아니다. 고시 공부한답시고 친구 세 명과 함께 절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절에 들어간 첫날 마을에 내려가 고주망태가 되었다. 스님에게 들킬까 봐 숨어 들어왔는데, 그는 만취가 되어 사고를 쳤다. 절 앞 깨밭에 들어가 추수 앞둔 참깨를 몽땅 뽑아 대웅전 지붕으로 던졌다. 아침에 스님이 대로하여 그 길로 쫓겨났다. 깨 값은 부모 몫이었다.

                 


  대학 졸업 후 해운 업체에 입사했으나 일 년을 채우지 못했다. 상사의 갑질에 분노하여 책상을 업어치기 하고 퇴사했다. 덩치가 크고 말수가 적었던 그를 친구들은 곰이라 불렀다.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 선배 덕인지 학교 이름 덕인지 곧바로 은행에 재취업하여 지점장 승진 때까지 잘 지내는 듯했다. 대구 지점장으로 근무 중 정에 끌려 불량 담보 대출이 문제가 되었다. 검찰에 고발되어 빈손으로 은행을 떠났다. 은행마저도 순탄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한동안 방황하다 50대 초반에 한의사가 되겠다며 공부를 시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포기했다. 한 가지 지속했던 일은 도올 선생의 강연을 찾아다니고, ‘주역’등 철학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그에게 큰 시련을 준 사건이 있었다. 유일한 동생이 기차를 타고 단양의 똬리 굴(현 대강 터널)을 지날 때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터널 벽에 부딪힌 동생의 시신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해 살점 하나씩을 주워 담아 수습해야 했다. 동생의 참혹한 죽음으로 인하여 삶에 대한 허무가 그의 정신세계를 바꿔놓았다.     

  그가 출가하겠다고 선언한 이야기는 아들 결혼식 소식과 동시에 전해졌다. 부인이 찾아와 출가하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통곡했다. 나도 놀랐지만, 아들 결혼식을 앞둔 부인은 감당하기 힘든 듯했다. 진해에서 해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그를 만나 결혼했다는 부인은 남편의 방랑 끼를 이해하고 가정을 꾸려온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였다. 친구들도 부인 덕에 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랬던 부인이 남편의 출가 소식을 들은 뒤, 지난 모든 일 들이 원망으로 변한 듯했다.   

 


  그는 처음부터 스님이 돼야 했었다. 자유로운 사상적 영혼과 삶에 대한 허무주의 성향, 철학이나 주역 같은 동양적 철학에 심취하고픈 학문적 갈증 등이 그를 늦깎이 출가로 인도했을 거였다. 

  출가 후 첫 부임지인 미국 미네소타 포교원으로 떠났다. 아들 결혼식 전날 부인에게 혼사를 떠맡기고 홀연히 떠났다. 떠맡긴 것이 아니고 속세의 일이니 관심 없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아들이나 가족에게 미안하거나 책임감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고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떠났다. 출가한다고 일방적 통보를 했을 때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삼 년이 지난 어느 날 단풍 곱게 물든 함양 상림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미국 포교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선원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참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진정한 행복을 찾은 듯 보였다. 

  그와 헤어져 공원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신라 진성여왕 때부터 가꿔온 천년의 숲이다. 장삼 자락을 휘저으며 낙엽 쌓인 숲길을 편안하게 걸어가는 그의 어깻죽지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딪치며 살아가는 부인의 그림자가 걸려있었다. 

  ‘진정한 행복’ 그가 던진 화두를 생각하며 숲길을 오래도록 걸었다. 나를 위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그를 통해 나를 본다.(사진 : le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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