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벌룬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이 이루어졌다.
어릴 적 대천해수욕장 상공에는 애드벌룬이 떠 있었다. 어찌나 큰지 올라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삼십여 년 만에 이루어지게 됐다.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일 년 지난가을이었다. 아침부터 가슴이 콩닥거렸다. 처음 하늘을 날아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해외는 고사하고 제주행 비행기도 타본 경험이 없던 터라 하늘을 날아본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었다. 친구 녀석은 ‘에어버스 A380’이라는 꿈의 여객기 타고 유럽 다녀왔다며 자랑질이나, 나는 항공기 대신 풍선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첫 경험을 하게 됐다.
우리가 타려는 풍선은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해 영국에서 도입한 ‘스카이쉽 600’이라는 비행선이다. 도입과정에 비리가 밝혀져 관계자가 구속되는 등 말썽 많았던 비행선이다. 올림픽 끝난 후 육백만 불짜리 비행선은 활용방법이 없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진흥공단이 떠안아 김포공항 외곽 계류장에 보관하고 있었다.
하늘을 난다는 점에서 비행선도 항공기로 취급되었다. 탑승 절차나 운행허가 등도 일반 항공기와 다르지 않았다. 풍선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거나 항공기 타고 외국에 나가는 거나 설레고 흥분되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권이 아닌 주민등록증으로 탑승 절차를 밟고 탑승권이 없다는 거다. 수속을 끝내고 공항 내 셔틀버스를 타고 외곽 유휴부지에 있는 비행선 계류장으로 이동했다. 처음 본 비행선은 충격적이었다. 거대한 크기에 놀라고, 어린이 풍선처럼 밧줄에 묶여있는 것에 놀랐다. 길이 육십 미터, 높이 이십 미터나 되는 거대한 고래 모양의 풍선이 어린이 손에 들린 오색풍선처럼 밧줄에 매여있는 꼴이 우스웠다. 풍선만 보일 뿐 탑승할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훑어보니 풍선 아래쪽 받침대 같은 조그만 공간이 보였다. 조종실과 탑승 좌석이 그곳에 있었다. 풍선 크기에 시선을 빼앗겨 보이지 않았던 거다. 아름드리 고목에 매미가 붙어있는 꼴이다. 풍선과 분리해서 보면 결코 협소한 공간은 아니었다. 커다란 엔진 두 대가 양쪽에 장착되어 있고. 조종사, 부조종사, 정비사를 포함하여 세 명의 운항 요원이 조종하는 비행선이다. 스무 명이 탑승 가능한 좌석도 마련되어 있었다. 헬륨가스를 넣어 지상에서 가볍게 떠 있는 상태로 보관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륙 허가가 떨어지자 비행선 주변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항공기라면 이륙할 때 근처에 사람이 접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상반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여섯 명이 비행선에 달라붙어 밑부분 주머니 같은 곳에서 무거운 납덩이를 꺼내느라 바삐 움직였다. 웬 납덩인지 알 수 없으나 상당량의 납 주머니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비행선을 묶어 놓았던 밧줄을 풀고 나서야 사람들이 물러났다. 헬륨가스를 채워 넣은 풍선이라 지상에서 가볍게 떠오르자 이륙을 위해 엔진 속도를 높였다. 항공기 이륙하듯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십여 분지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운항고도 이백오십 미터, 시속 칠십 킬로미터로 운항 중이며, 운항고도 오십에서 삼백 미터 사이를 스물네 시간 운행할 수 있다는 설명과 안전고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안전띠를 풀어도 된다고 했다.
처음 비행기 타면 그렇듯 좌우 창문을 오가며 지상 모습을 구경하느라 호들갑이다. 항공사진을 본 경험이 없던 터라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상 모습은 신기했다. 조그만 자동차, 녹색, 붉은색, 회색의 지붕들, 구불구불한 국도, 쭉 뻗은 경인고속도로, 나지막한 산, 저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신들이 내려다봄 직한 세상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의 기내서비스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곤 탑승 기분은 여객기와 다름없었다.
감탄사는 잠시뿐. 헬륨가스 넣은 대형 풍선이라 바람에 매우 취약했다. 약한 바람에도 떠밀리고, 오르내리며 두둥실이다. 그럴 때면 조종사는 엔진을 가동해 비행선을 안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지상에서 바라본 유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비행선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바람 및 기압의 변화에 따라 수십 미터씩 오르내리는 피칭(앞뒤로 흔들리는 현상)의 깊이가 매우 컸다. 마치 내 몸을 긴 줄에 묶어 시계추처럼 흔들며 가는 것 같았다. 머리가 흔들리고, 위胃를 통돌이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것처럼 몇 번을 뒤틀어 놓았다. 어제 먹었던 것까지 뱃속에 들어있는 걸 몽땅 반납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기색이다.
인천을 벗어나 서해로 향했다. 팔미도 등대를 지나 덕적도 상공을 선회 후 북쪽으로 향할 때였다.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공군에서 회항 조치 명령이 내려졌다. 북한군이 서해상에 처음 출몰한 거대한 비행선에 놀라 미그기 편대를 출격시켰다는 거였다. 위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급하게 돌아간다는 다급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만약 북한군이 기총사격이라도 하는 날이면 풍선에 구멍이 뚫려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기내 분위기는 급랭急冷 상태로 변했다. 급하게 기수를 내륙 쪽으로 돌렸다. 자월도, 영종도를 지나 인천 시내 상공에 이르자 해동된 듯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 탓인지 급성 장염에 걸린 듯 모든 걸 쏟아내던 멀미도 멈췄다. 더는 쏟을 것이 없어 멈춘 것 같기도 하고, 황달 걸린 환자처럼 핏기 없는 노란 얼굴이다. 해군 출신이라 구축함 타고 동 서해 다 돌아다녀 멀미 걱정 없다고 큰소리쳤던 일이 머쓱해지고 말았다. 풍선 타고 날아본 건 처음이라 예전엔 미처 몰랐다며 변명을 늘어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여객기도 이리 멀미를 하는지?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비행선도 착륙할 때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착륙하는 바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앞쪽에 매달린 밧줄을 지상 요원이 잡아당겨 착륙하는 완전 수동방식이란다. 줄을 잡을 수 있도록 적정 고도와 속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지상 요원 대여섯 명이 비행선에 앞부분에 매달린 밧줄을 잡으려 두 팔을 벌린 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마치 하늘에 구원을 청하는 광신도 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먼저 밧줄을 잡으면 여러 명이 달려들어 비행선을 지상으로 끌어당겨 고정했다. 그와 동시에 꺼내 놓았던 납덩이를 비행선 밑 부분 주머니에 서둘러 집어넣었다. 헬륨가스를 주입한 비행선 몸체 부력을 납덩이 무게로 균형을 맞춰주어야 떠오르지 않고 안정적으로 계류장에 정지해 있단다. 소란스러운 작업이 종료된 다음에야 착륙이 완료되었다. 명색이 하늘을 나는 비행선인데 사람 힘으로 끌어내려 착륙시킨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커다란 몸체의 풍선만 보고 부드러울 것으로 판단했던 비행선은 순둥이가 아니었다. 잔잔한 물결을 보고 바다 깊이를 알 수 없듯이 보이는 건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님을 체험한 풍선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 첫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