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은 폐계(廢鷄) 취급받지 않으려 무정란을 낳았다.
암탉 세 마리에 수탉 한 마리가 닭장 식구다. 날마다 알을 낳고, 봄이면 유정란을 부화하여 병아리를 기르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랬던 닭장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닭장의 행복이 사라진 건 큰 매형 방문이 원인이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맏사위 온다고 안절부절이다. 흔히 사위를 백년손님이라 하지만 시골에선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아 그런 듯하다. 고심 끝에 닭을 잡기로 했다.
암탉을 잡자니 주요 수입원인 달걀 생산 차질이 문제고, 수탉을 잡자니 병아리 생산이 걱정이다. 달걀은 우리 집 생활용품 구입에 요긴하게 쓰였다. 어머니는 읍내 장에 갈 때면 볏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 네댓 개를 갖고 갔다. 그걸 팔아 비누, 설탕, 조미료 같은 것을 사고, 우리에게 줄 사탕 몇 알도 사 왔다. 고민 끝에 수탉을 선택했다.
평소 한 평 남짓 좁은 닭장에 사는 닭들은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수탉이 우렁찬 울음으로 새벽을 열면 암탉도 횟대에 앉아 꼬꼬댁- 응수하며 아침을 맞았다. 부지런히 아침 모이 쪼아 먹은 암탉은 오전에 산란 마치고 나서 수탉을 차지하기 위한 사랑 경쟁을 벌였다. 어떤 날엔 질투가 도를 넘어 심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깃털을 곧게 세워 상대에게 겁을 주다가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할퀴며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중 약한 암탉이 깃털 빠지고 달아나야 사랑싸움은 끝이 났다.
수탉은 사랑받을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유난히 볏이 붉고 톱니 같은 시울이 탐스럽고, 화려한 깃털은 윤기가 반질거려 기품이 있었다. 동네 다른 집 수탉보다 덩치가 크고 발톱도 날카로워 암탉을 해치려는 강아지를 공격할 정도의 용맹성도 갖고 있었다.
유일한 수탉이라 암탉의 환심을 독차지하지만, 수탉도 자존심이 강해 사랑할 암탉을 선택하는데 신중함을 보였다. 점찍은 암탉에게는 좋은 먹이가 있는 곳을 안내하고 머리를 흔들거나 꼬꼬댁거리며 구애하기도 했다. 암탉이 구애를 받아들이면 위에 올라타고 암탉의 볏이나 목 주변 깃털을 움켜잡고 사랑을 나눴다.
2~3초 시간에 항문 맞춤(배설강 맞춤)을 통해 배설강 내부에 있는 유두 모양의 작은 돌기를 통해 정자 세포를 암탉의 배설강으로 분출한다. 그것으로 유정란 생산을 위한 사랑은 끝이다. 암컷의 배설강으로 이동한 정자는 2주 이상 생존하며 종 번식을 위한 수정(受精)을 한다.
암탉은 노른자를 먼저 만들어 정자를 기다린다. 정자가 들어오면 난관의 누두부에서 배란하여 십오 분 정도 머물며 수정시킨다. 그런 다음 난관 따라 이동하며 흰자를 만들고, 흰 막(속껍질)으로 전체를 감싼 상태로 자궁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18~24시간 머물며 단단한 껍질이 완성되면 산란을 한다.
암탉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돌아오지 않는 수탉이 걱정이다. 수탉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암탉들은 이곳저곳 애타게 찾아다녔다. 샘닭이, 꼬리닭, 울보닭을 찾아가 수탉이 왔었는지 수소문하기도 했다. 간혹 바람피우느라 이 집 저 집 들락거리긴 했어도 밤새 외박하는 일은 없었다. 닭장 책임자로 사랑하는 수컷으로 믿고 따랐던 수탉이 사라진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수탉이 없는 닭장에 남겨진 암탉들은 삶에 의욕을 잃었다. 알 낳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한 무정란을 낳아봤자 자손 번식도 못하고, 주인이 달랑 꺼내 가는 것도 싫었다.
부화하여 일곱 달 정도 성장한 암탉은 볏이 붉고 반듯하게 세워져 젊고 아름다움이 절정기에 도달해 있었다. 매일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유정란을 왕성하게 생산할 때 갑자기 수탉이 사라졌으니 청상과부 신세다.
암탉들은 삶을 포기하고 우울한 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탉이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고 달걀을 계속 낳기로 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의욕 잃고 생기 없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생기 잃은 모습에 수탉이 실망하여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서다. 알도 낳지 못하는 폐계(廢鷄) 취급받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수탉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정란을 낳았다. 이런 간절함으로 달걀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는 꾸준히 알을 낳아주는 암탉이 고마웠다. 방금 낳은 따뜻한 달걀을 꺼내면서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위 대접을 위해 사랑하는 수탉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챌까 해서다. 암탉들이 수탉의 죽음을 가출이나 실종으로 믿어주길 기대하며 닭 잡은 흔적을 말끔히 치웠다.
어머니는 닭과 마주치는 시선을 피했다. 미안한 마음에 싸라기 한 바가지를 덤으로 주었다.
“꼬꼬댁- 꼬꼬댁-”
수탉 부르는 소리가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어머니는 다음 장날 어린 수탉 한 마리를 사 와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