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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24. 2022

통가리

욕심이 죽음을 불렀다.

  온통 쥐 천지다. 논두렁이고 마루 밑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다. 먹성은 어찌나 좋은지 장정 한몫은 너끈히 해치운다.

  가을걷이 끝내도 식량은 언제나 부족하다. 이삭 줍고 타작 끝낸 마당에서 낟알도 모은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기는 하나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 겨우내 온 식구가 먹어대는 식량은 벼 다섯 섬을 비우고도 부족하다. 이리 부족한 식량을 이 녀석들이 축낸다. 논두렁에 굴을 파고 살면서 떼로 몰려와 먹어치운다. 벼 이삭을 잘라가고, 볏단 타고 앉아서도 먹는다. 색대로 꺼내듯 능숙하게 볏섬을 뚫어 빼먹는데도 선수다. 배를 채우고 돌아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다. 이삭을 끊어 물고 간다. 월동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집안까지 기웃거린다.    


  뒷방에는 커다란 고구만 통가리가 있다. 무서리 내린 후 캐어 저장해놓은 고구마가 가득이다. 부족한 쌀을 대신해 우리 가족 겨우살이 양식이다. 먹성 좋은 녀석들은 그것을 노렸다. 마루를 오르내리더니 여닫이문 아랫부분 격자무늬 창살에 구멍을 뚫어 길을 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창호지 두세 겹으로 구멍을 막았다. 돌아가며 뚫어대는 그들의 집요함을 당할 재간이 없다.

  밤이 되면 언제 들어왔는지 통가리 속에서 잔치를 벌인다. ‘찍-찍 찌지- 직’ 노래도 부르고 ‘사각사각’ 갉아먹기 시합도 한다. 먹을 걸 축내는 쥐를 놔둘 순 없다. 아버지는 쥐잡이에 나섰다. 여닫이문 밖에서 쥐구멍에 자루를 대고 기다리면 어머니는 고구마 통가리를 툭툭 치고 흔들어 겁을 준다. 함정을 알 턱없는 어린 쥐들은 꽁지 빠지게 들어왔던 구멍으로 달아난다. 처음 빠져보는 자루에 당황하여 발버둥 치고 울부짖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어미 쥐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통가리 속에서 죽은 듯 때를 기다린다. 흔들고, 나뭇가지로 쑤시며 겁을 줘도 버틴다. 밖으로 나가면 황천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몇 차례 겁을 주다 포기할 거란 계산도 한다. 아버지는 속아 넘어가 포기하고 만다.

  실컷 배를 채운 녀석들은 한바탕 놀이판을 벌인다. 천장 속은 그들의 운동장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달리기 시합도 한다. 응원하는지 ‘찍-찍-’여러 마리가 목청을 돋운다. 흥분한 몇 녀석은 천장에서 내려와 이불 위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빨이 근질거리면 옷장에 들어가 옷을 갉아놓기도 하고 이불에 구멍도 낸다. 잠들면 얼굴 물어뜯을까 공포에 떨던 날도 많았다.

  이 녀석들은 어찌나 약삭빠르고 날쌘지 당할 재간이 없다.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사람을 쥐새끼 같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장독 사이로 달아나니 독 깨질까 봐 돌을 던질 수 없고, 찬장 위를 오르내려도 몽둥이로 내려칠 수 없다. 이빨은 어찌나 단단한지 무쇠도 갉아먹을 듯하다. 찬장에 구멍 뚫어 음식 훔쳐 먹고. 문틀 갉아 방안을 제집 드나들듯 한다. 대범해진 녀석들은 대낮에도 무리 지어 부엌이고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화가 난 아버지는 쥐구멍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고, 뜨거운 물을 붓기도 했다. 이곳저곳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은 쥐를 당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쥐약을 놓기로 했다. 약삭빠르긴 해도 식탐은 이겨내지 못했다. 하룻밤에 십여 마리 잡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죽은 쥐를 탐내는 개들이 문제다. 언젠가 약 먹고 죽은 쥐를 먹은 동네 개 세 마리가 하룻밤에 죽은 적도 있었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이 생각나 고양이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몇 년째 기르는 나비라 부르는 고양이가 있다. 어머니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녀석이다. 따끈한 부뚜막 차지는 물론 밤이면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생선 국물에 비벼주는 밥을 먹고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이나 즐기며 빈둥대는 녀석이다. 나비에게 고구마 통가리 드나드는 쥐를 잡으라 했다. 그 녀석은 쥐 잡을 생각은 고사하고 못 본체 묵인까지 해 줬다. 쥐들도 나비가 무능하다는 것을 아는 터라 무시하고 드나들었다. 등 따시고 배부른 녀석에게 쥐잡기를 기대한 것은 무리였다.

  쥐 잘 잡기로 소문난 ‘샌돌이’를 이웃 동네에서 사 왔다. 그 녀석은 눈빛부터 달랐다. 새끼 때부터 배를 곯아 쓰레기를 뒤지고 썩은 음식을 먹고 자란 녀석이라 했다. 부뚜막에서 몸을 녹여 본 적도 없고, 발로 차이고 쫓기며 자랐다.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주인 눈치를 살피고 무엇을 해야 발길질에 차이지 않는지도 터득했다.

  첫날 샌돌이는 통가리를 들락거리는 왕초격인 크고 힘센 쥐를 먼저 잡았다. 내장을 도륙 내고 살을 찢었다. 참혹한 광경에 다른 쥐들은 겁에 질려 옴짝달싹 못 했다. 그가 지키고 있는 동안 통가리 근처엔 얼씬거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샌돌이에게 생선 대가리를 보상으로 주었다.



  며칠 후 이웃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관절 아픈데 고양이 탕이 좋다며 한 마리를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쥐도 못 잡고 빈둥대는 나비를 가져가라 했다. 그 모습을 본 샌돌이는 아버지 비위를 맞추려 더 많은 쥐를 잡았다. 그 덕에 귀염을 독차지하고 따뜻한 부뚜막은 물론 안방까지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다.     

  쥐들은 과한 욕심이 문제였다. 부족한 식량을 탐했으니 고양이를 불러들였고. 창문에 구멍 내고, 찬장을 들락거리니 어머니 원성을 샀다. 논두렁에 구멍 내고, 벼를 먹어치우니 농부의 화를 돋웠다. 나라에서 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날한시에 온 동네에 쥐약을 놓고, 먹을 것을 치웠다. 학교에서는 쥐꼬리를 잘라 가져오라고 했다. 지나친 욕심이 멸종위기를 자처했다. 욕심을 내려놓은 가벼운 삶을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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