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험'을 계속하라
내가 좋아하는 것
외국계기업 이제 15년차, 관리직에 있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마주하는 사람들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있는 우리 회사 임직원들, 내부 '고객'들이다. 내가 속해 있는 리젼은 11개의 국가 약 만명의 전문직이 근무하는 그야말로 다양한 집단이며 거대한 조직이다. 스스로 노력파라고 자부하는 나는, 15년 동안 열심히 '시키는 일만' 하진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때는 내가 만들어내는 노력의 산물을 누군가가 필요로하거나 그것을 활용할 때이다.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다. 태생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정치적으로 잘 보이려고 하는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내가 쓰는 에너지가 임팩트로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야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일의 임팩트를 보려하다
그렇다.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어딘가에 내놓아 반응을 보는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관리직에 오래 있다보면 내가 하는 일의 직접적인 '임팩트'를 눈으로 보는게 참 어렵다. 특히 타이타닉같이 거대한 조직에 몸담고 있다보면 더욱더. 굳이 봐야 하느냐 월급만 잘 나오면 되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반응을 보지 못하고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직장내에서의 서바이벌 방법은 스스로 내 고객을 찾는 것이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멀어질수록 페이퍼워크는 많아지고, 미팅을 위한 미팅,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들을 설득하기 위한 말잔치로 가는 '내부'일들이 나의 존재가치를 의심케 했으니까.
고객을 찾아나서다
5년 동안 아시아퍼시픽 허브에서 관리 중심의 업무를 하고 나니, 몸이 너무나 근질 거렸다. 어떤 중간다리나 층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고객을 만나고 싶어, 좀더 그럴수 있는 자리로 보직을 옮겼다. 물론 영업직이 아니라 한계는 있지만, 그 후로 나는 틈만 나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고, 나를 표현하고, 내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보여주려고 했다.
고객을 찾는 것은 실험의 연속, 진실의 순간(MoT) 을 만나다
최근에 스스로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각 나라에 있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일대일로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조직의 다양성과 포용을 전담하고 있는 내가 접근할수 있는 테마는 '소속감 (Belonging) 의 의미'였다. 최근 우리 조직의 HR 전략 목표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 그냥 막연히 우리 스텝과 리더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싶었고, 들어야 비로소 알것 같았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우리 조직의 경우, 특히 동양적 사고, 서양적 사고 (물론 일반화할수는 없다) 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소한 커뮤니케이션 문제, 조직에서 느끼는 안정감의 문제등이 주요이슈인데 이것을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듣지 않고 전략/전술을 논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작게 빠르게 시작하는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여러 유관부서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띄우기 보다는 이번만은 빨리 해보고 싶어서 개인 프로젝트처럼 거의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담 팀에게 협조 요청을 하려면 여러 내부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처지에서 그런 절차와 노력으로 진을 빼고 싶진 않았다. 첫 인터뷰 대상을 우선 섭외했고, 인터뷰 질문을 만들고, 인터뷰 진행과 동시에 이를 영상으로 녹화했다. 그리고 몇시간만에 유튜브 독학으로 동영상 편집기술까지 익혀 10분짜리 영상을 음악까지 넣어 완성시켰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진행됬다. 큰 욕심없이 한번 실험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기 때문인것 같다. 사내 포털에 영상을 올렸고,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외국 동료들의 첫반응은 "이거 편집 너가 했어? 아니 어떻게?" "이 내용 너무 영감이 괜찮은데?" 였다. "영감"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몇몇 동료들이 추가 인터뷰를 사람들을 추천해줬고, 나는 순식간에 4명을 인터뷰했고, 영상을 모두 완성시켰다. 일본, 홍콩, 유럽, 호주, 싱가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마주하며 진심으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 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MOT 란 "고객이 조직의 어떤 일면과 접촉하는 접점으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과 그 품질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는 순간이나 사상(事象)"을 말한다. 고객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과 어떤 형태로 접촉하든지 간에 발생하며, 이 결정적 순간들이 하나 하나 쌓여 서비스 전체의 품질이 결정된다. 따라서 고객을 상대하는 종업원들은 고객을 대하는 짧은 순간에 그들로 하여금 최선의 선택을 하였다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객만족이자 자기만족
진실의 순간을 마주하는 그 시간 동안 깨달은 사실은 나와 고객의 '마음'이 만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만났고, 그 만남과 시작과 지속은 서로가 생각한 가치가 만났던 것이고 그로 인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교감하고 그 시간을 즐길수 있었다. 그것은 고객에게만 가치로운 경험이 아니라, 나에게도 가치로운 경험이었다. 결국 고객의 만족은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게 했다. 내가 좋아서한게 고객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진실의 순간은 또 다른 시작
그렇다면, 진실의 순간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노. 그렇지 않을때가 더 많고, 실망과 좌절의 시간도 부지기수이다. 진실의 순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또 더 확장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뾰족한 마법같은 뭔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인터뷰했던 4명의 고객과 소통하며, 이들에게 피드백을 구하며 지속적으로 연결고리를 만들것이다. 또한 이들과 비슷한 입장에 있는 '글로벌 시티즌'들의 고민이 뭔지 함께 고민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면 좋을지 생각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호기심 -> 실험정신으로 일단 시작 -> 피드백 / 반응 감지 -> 보완/개선의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중요한것은, 진실의 순간이 감지되면 그 땐 정말 진심으로 나를 드러내고 고객입장에서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