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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비 Dec 26. 2022

섬진강에 찾아온 겨울

구례에서

호젓하게, 또 열심히 걷고 싶다.

아침햇살이 기분 좋게 반짝이고 이 공간에 온전히 나 뿐인 것이 전혀 외롭지 않다. 정말 오랜만에 아침에 웃어 보았다. 커피를 내리고 등 뒤로 해를 맞으며 추운 몸을 녹이고 생각했다. 무인도에 떨어진 듯한 지금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어떤 계획도 없고 수 많은 계획이 공존하는 어지러운 시간들이 내 옆으로 차분히 가라앉은 평온함이다. 


옆집에게 숙제 같은 인사치레를 마치고 자유의 시간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정작 그 대화는 타인의 관심사를 빗나간다. 불편한 시간도 참는 연습을 한 번 했다. 

가고 싶던 섬진강 길을 걸으며 찾아온 겨울의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는 뽀드득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다. 피하려고만 했던 겨울이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만 같은 시간이다. 광활히 펼쳐진 지리산 산맥들은 피로한 눈에 안정을 주고 어지러운 머릿속도 적당히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또 기쁜 일이 있다면 내 주변이 조금씩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를 부르고 내게 관심을 준다. 원하기만 하다가 원해지는 기분은 추운 날 받은 핫팩처럼 반갑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가고 싶었던 카페에서도 꽤나 흥미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물론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선명한 한계가 보이지만 그 선을 만나지 않을 만큼만 가볍게 대화했고 그게 나름 편했다. 그 기억들을 붙잡고 싶어서 추운 바람에도 이곳에서 글을 끄적인다. 구례를 내려다보면서 이 마을을,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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