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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비 Jan 15. 2023

기억하고 싶어서

그런 대화들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걸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 나와 연락하는게 외로워서인지. 나는 당신이 보고싶다고. 너무 보고싶어서 계속 연락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어쩌면 너무나 섣부르게 말을 꺼내 버렸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어떤 표정인지 알 수도 없는데.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는지. 갖고 있던 확신들이 손 틈새로 스르르 빠져나가고 손 위에는 불안함이라는 카드만 남는다. 

말을 더듬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전화 너머의 그 목소리가 너무나 불안해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울음이 왈칵 터져나오려 했다. 사실 그냥 울고 싶었다. 아 나는 하나도 변하지 못하고 섣부른 선택만 반복하는구나. 이 관계를 끌어갈 수 있는 밧줄을 내 손으로 끊어버렸다는 자괴감과 거절의 상처가 버무러져 그냥 울음이 날 것만 같은. 어떤 탄식의 소리밖에는 하지 못하겠더라. 음. 아. 네. 

당신의 마음이 미치도록 궁금해서 선물 포장지 뜯는 아이 마냥 북북- 그 마음을 찢어서 갈라놓고 싶다. 진실을 말해달라고. 도대체 어떤 마음이냐고.  


그리고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는 순간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당신이 내게 얘기하고 있었다. 작게 고백하는 아이처럼 그 컵에 덩그러이 놓여 있는 칫솔을 보고 이 사람은 도대체 언제 오는거지- 라는 그 나지막한 읇조림이 내게 강렬하게 와닿는다. 가만히 호수에 내려앉은 단풍잎처럼 작은 착륙에도 마음에 물결이 출렁인다. 도대체 언제 오는거야- 라는 그 말이, 돌아온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그 작은 투정부림이, 짧은 익숙함에서 나오는 그 작은 기대가 내게도 전해져서 나는 그 말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니 이 사람은 도대체-


사실 나도 그렇다. 아니 이 사람은 도대체- 왜 나와 얘기하는게 그렇게 반가웠지? 왜 나를 조금씩 기다렸지? 왜 나와 더 만나고 싶었지? 왜 나를 차지하고 싶다는 말을 해서 설레게 만들지? 그런데 왜 나를 밀어내려고 했지? 왜 함부로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지? 그러면서 왜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거지? 왜 이렇게 사랑스럽지? 왜 이렇게 귀엽지? 왜 이렇게 슬퍼보이지? 왜 이렇게 안고싶지? 왜 이렇게 보고 싶은거지?

혼란스러움.

그리고 그리움.


그는 알까? 전화하면서 빨리 제주에 가고 싶다고 표현하면 왜요 곧 보는데- 며칠 안 남았는데 10일밖에 안 남았는데- 조금은 태연하게 맞받아치는 말이 나를 얼마나 의기소침하게 만드는지? 나만 얼굴이 보고 싶은 것 같은 마음의 불신은 조금씩 나를 소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왜 궁금하고 알고 싶은지,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좋아하니까. 

나도 그래요- 그 말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몸을 베베꼬면서 말하는 것 같은 그 수줍은 표현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 모습을 상상하고 그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들어야 하는데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해버렸다. 사려니에서 당신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그 알량함과 같은 공간에서의 어색함, 타인과의 모임에서 달라지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긴장을 했는지, 그런 내 시선의 예리함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당신의 말에서 느낀 죄책감까지. 너무 많은 것을 말해버렸다. 내 치부를 들킨 것만 같다. 

어쩌면 철저하게 계산하는 머리와 누군가를 교묘하게 통제하려는 내 음흉한 내면을 들켜 버린 것 같다. 그 모습을 잡아내고는 나를 향한 마음을 덜어낼 것만 같은 아선이 그려진다. 오늘은 내가 더 불안했다. 내게 좀 많이 실망했을까봐. 카톡도 잘 읽지 않고 묵묵한 그 모습이 벌을 받는 것만 같다. 

불안.

내가 답장이 느리고 연결되지 않는 감각이 당신은 불안하다고 했다. 오늘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아 내가 당신을 조금 좋아하고 있나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채팅목록을 뒤돌아가 찾아봤다는 얘기가 내게는 선물 같다. 웃기지만 그렇다. 그동안 내가 타인에게 하던 짓을,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려는 그 어쩌면 음흉한 발걸음이 상대에게 느껴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나는 고맙다. 나에게 관심을 줘서 고맙다. 나는 관심 받는 것이 좋으면서 익숙하지 않은데 그걸 선뜻 선물상자처럼 꺼내 주는 그 행동이 감동적이다. 

그래 감동적이다. 그 말이 맞다. 


다시 한번 얘기를 듣고 싶다. 나를 어떻게 생각했고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나를 언제부터 조심스럽게 대했는지. 어떤 긴장감을 가지고 어떤 기쁨을 가지고 내게 연락했는지 그 상세한 내막을 다시 한번 당신의 입으로 듣고 싶다. 어쩌면 그 감정에 취해서, 내 멋진 모습에 취해서, 그런 모습을 똘망똘망 바라보는 당신의 사랑스러움에 취해서 그 이야기를 와구와구 탐닉하고 싶다. 

체하고 싶다. 

많이 많이 듣고 많이 많이 말해주고 싶다. 

그 얘기들이 앞으로 내 세상에 등대가 되도록 하나 하나 내 안에 새기고 싶다. 


그 말들이 그리워 주먹을 움켜지게 되는 마음. 휘발되는 말들이 아쉬워 더욱 움켜쥐는 그 마음도.

오래도록 머무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진해지면서 나는 그렇게 또 당신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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