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사유구조 비교
오래 전 철학에 막 발을 들여 놓고 철학과 4학년 수업에 들어갔을 때이다. 그 때는 호기심에 칸트나 헤겔의 이름 정도만 알았지만,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그 때 영문과의 한 학생과 철학과 생이 토론을 하던게 인상적으로 느겨졌다. 그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직관에 의한 결론인가 아니면 추론에 의한 결론인가라고 싸운 것이다. 직관의 결론이라 함은 생각=존재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것이고, 추론의 결론이라 함은 생각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점에서 존재는 추론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물론 후자의 입장이겠지만, 전자의 주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관과 추론'은 철학의 두 가지 중요한 방법이다. 어떤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그 철학자의 특성이 결정되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의 개척자인 프로이트는 의사로서 경력을 쌓아 나갔다. 철학자와 달리 자연과학도인 그는 엄격한 실험과 경험적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자연과학자는 새로운 문제 상황을 접할 때 먼저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같은 경험적 방법을 통해 그것을 검증한다. 그가 나중에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자연과학의 연장 속에서 정신을 이해하고자 한 결과이다.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니체는 약관 24살에 스위스 바젤 대학의 교수로 취임했다. 그는 문헌학자로서 시작했지만 그가 28살에 쓴 <비극의 탄생>은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었지만 동시에 문헌학자로서의 경력을 더 잇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 정신을 규정짓는 두 가지 정신으로서 '디오니소스적 정신'과 '아폴론적 정신'을 꼽았다. 후자는 자유로운 개체의 정신인 반면, 전자는 전체와 공동체의 정신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문헌학자로서의 엄밀한 추론에 의존하기 보다는 니체의 천재적인 직관에 의존한 바가 더 컸다. 이것이 문헌학계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나중에 의식적으로 니체의 책을 피했다고 한다. 엄격한 자연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자신의 결론이 니체의 철학적 직관과 비슷한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뛰어난 직관을 통해 인간에 대한 통찰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정신'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Thanato)와 유사한 면이 많다. 이들 모두가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생명에의 욕구' 보다는 죽음으로 환원하려는 충동이 보다 근원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니체 식의 직관과 사변으로 왜곡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경계하고 차단을 했던 것이다. 사실 이 둘은 추론과 직관이라는 두 가지 사유 방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사고는 분석적 추론이 강하고, 동양의 사고는 미학적 직관이 강하다고 한다. <중국 철학사>를 쓴 풍우란도 자기 책의 서문에서 동서양 사고의 차이를 위와 같이 구분했다. 농경 생활을 하는 중국인들은 항상 자연 환경과 계절의 변화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이런 변화의 자그마한 차이를 경험적 직관을 통해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인들은 사물에 대한 분절적 사고 보다는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사고에 더 익숙하다. 중국의 오랜 고사인 '새옹지마' 이야기가 그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느 날 말 한마리가 굴러 들어오자 동네 사람이 말이 제발로 들어와서 기쁘겠소라고 하니까 노인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아들이 타고 다니다가 낙마해서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을 보고 이번에는 아들이 다리를 다쳐서 마음이 아프겠소 하니까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마침 전쟁이 일어나자 그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징집 당했지만 다리를 다친 아들은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무엇이 좋고 나쁘고는 사태 전체 속에서 파악할 일이지 개별적인 사건에 일희일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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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양의 사고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에서는 중국과 전혀 다른 사고가 발전했다. 그리스의 도시는 대부분 해안에 위치해 있어서 그들은 농업 보다는 상업을 통해 생활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먼 나라로 가서 무역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거래를 위한 말(언어)이 중요했다. 그리스는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했고, 개인주의와 다양성이 팽배했다. 그들은 늘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여서 폴리스의 통치와 관련해 사람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정치인들은 말을 통해 대중을 설득해야 했고,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개인들은 법정에서 말을 가지고 싸워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인들은 일찍부터 말로 따지는 일에 익숙해졌다. 소피스트들(Sophistes)은 이런 말하기 기술을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가르쳐 주던 사회과학자이자 학원 선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한 학생이 선생을 찾아가서 설득 기술을 가르쳐 주면 처음 시작할 때 수업료의 절반을 내고, 나머지 절반은 기술을 다 배웠을 때 내겠다고 제안을 했다. 선생도 이에 응하고 열심히 학생에게 설득 기술을 가르쳐 주어서 이제 하산해도 좋다는 판정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수업료 절반을 내라고 하니까 학생은 못내겠다고 하고, 선생은 반드시 받아야겠다고 했다. 결국 법정까지 갔는데, 그들 각각은 자기가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낼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은 철저히 분석적 사고에 기초한 추론이다. 가령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추론은 삼단논법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추론은 수학의 추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적 추론인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전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을 분해애 그 속에서 소크라테스를 밝힘으로써 중간의 매개념(사람)을 통해 소크라테스 역시 죽는다는 필연적 추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필연적 추론의 방법은 그 이후 서양적 사고의 전형을 마련했고, 이러한 추론에 기초해 과학과 수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다만 추론적 사유는 전제에 담긴 이상의 것을 밝힐 수 없다. 반면 중국의 미학적 직관의 경우는 다르다. 앞서 분해와 분석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직관이 미학적 사고를 특징짓는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개체 보다는 그 개체가 속한 전체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중요하다. 가령 동양의 산수화를 보면 거대한 산과 그 앞을 흐르는 물가에서 여유작작 즐기는 인간은 아주 작게 그려진다. 서양식으로 그리면 단연코 인간이 부각되겠지만 동양식 산수화에서는 전체에 대한 조감 속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한 부분만 차지할 뿐이다. 직관적 방법은 추론과 달리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사태에 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동양과 서양은 똑 같은 인간 사회지만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난다. 어디가 더 우월하다고는 말하기 쉽지 않다. 한 때 근대화에 앞선 서양이 물밀듯이 동양을 잠식했지만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볼 때는 그것은 잠시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 날 개혁 개방에 성공한 중국은 미국과 양 축을 형성하면서 모든 면에서 경쟁하고 대립하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과 세계화, 개방 무역 등은 동서양 간에 각종 형태의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과거처럼 두 문명의 차이가 뚜렷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점차 수렴하는 경향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직관과 추론의 방법은 상호 대립적이기 보다는 상보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