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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Aug 19. 2023

철학자와 현실


철학이 현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헤겔은 그의 책 <법철학 강의>(1821)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지면 날기 시작한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여기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을 상징하고, 어둠이 지면 날기 시작한다는 말은 현실의 운동이 마감한 다음 철학은 그것을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기술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헤겔에게 철학은 결코 현실의 운동을 앞서가나 동시대에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쫓아가면서 그 현실의 의미를 개념화하는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이 그 자신을 '지혜로운 학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부엉이 이야기에는 다른 버젼도 있다. 부엉이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컴컴한 밤에 눈을 형형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부엉이를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낮에 눈을 뜨게 된 부엉이는 너무나 눈이 부셔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이런 상태에서 이러 저리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동물들은 부엉이가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이런 부엉이의 일화는 철학의 경우에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근세 이후 철학으로부터 수많은 분과들이 떨어져 나갔을 때의 모습이 저 부엉이와 비슷한 신세였다.



철학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두뇌로 삼으려 했던 마르크스는 유명한 '포이어 바흐에 관한 테제' 11번에서 철학자와 현실의 관계를 실천적으로 명확히 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나중에 공산주의 이념을 확고히 정립했을 때 그는 "인간 해방의 두뇌는 철학이고, 그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라고 좀 더 리얼하게 규정했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생각은 헤겔의 현실 후속적인 태도에 비해 적극적으로 현실과 관계해서 그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이길 바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 이전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의 태도에서 보듯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철학의 추상적 개념을 통해 반성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철학과 현실의 관계는 한층 역동적인 상태로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을 도구로 간주하려는 태도는 20세기 들어 비트겐슈타인이나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 그리고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고 있다. 철학은 현실 속에서 운동하고 그 현실을 바꾸는 도구가 얼마든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사용할 수도 있다. 도구는 현실을 조작하고 구조화하는 수단인데, 마찬가지로 철학적 개념도 똑 같이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0세기는 철학의 새로운 위기의 시대였다. 전통적인 철학의 영역이었던 인간 영혼에 관한 지식이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으로 떨어져 나가고, 사회에 관한 부분은 사회학으로, 정치에 관한 부분은 정치학으로 등등 분과 학문들이 독자적인 연구 영역과 방법을 가지고 독립해 나갔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실증주의가 비등하고, 신과 영혼 그리고 세계에 관한 형이상학은 콩트나 데이비드 흄 말처럼 불쏘시개로 던져졌다. 그런 상황에서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경전화해서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고 했다. 검증이론(Verification theory)이 그것이다. 그들은 이 검증이론에 의해 철학을 '의미 있는 명제'와 '의미 없는 명제' 2개로 나눴다. 경험적으로 검증이 가능하고 논리 필연적인 자연과학과 수학 그리고 논리학을 여기에 포함시켰고, 가치 판단을 요구하는 윤리학의 명제, 검증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의 명제들은 무의미한 명제로 규정했다. 이런 무의미한 명제는 개소리와 같은 것으로 보아서 철학으로부터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오래 전 데이비드 흄도 형이상학에 관한 책들을 불쏘시개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진시와의 '분서갱유'는 끊임없이 현재화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삼은 '검증이론'은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비엔나 써클의 수장인 모리츠 슐릭은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쓴 총에 의해 죽었고, 비엔나 써클도 나치 치하에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아무튼 20세기 영미권에서 유행한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은 철학의 역할을 '의미의 명료화'로 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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