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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Eve

by 이종철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구나. 인류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기 위해 예수가 세상의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축복하는 날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명절 날 신나는 때도 있었고, 홀로 독방에서 지내던 우울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보고자 할 뿐이다.


겨울 혹한의 날씨가 많이 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차가운 겨울 날 새벽 6시에 아내는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60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없는 미안함을 느낀다. 장성한 딸은 여전히 외국에서 공부만 할 뿐이고, 늙은 나는 일할 곳이 없다는 핑계로 여전히 공부만 하고 있다. 먹고 사는 가장 중요한 짐은 아내에게 지우고 있으니 내가 할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글을 쓰고 늙도록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그런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그나마 면피하려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어디 가정 안에만 있을까? 한국 사회는 외형적으로 크고 화려해져 있지만, 이 사회의 양극은 갈 수록 깊어지고 있다. 양지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이대로!’를 외칠지 모르지만, 음지에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은 지옥이 따로 없다. 한 나라에 살면서 이처럼 불평등이 심화되면 될 수록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거기다 생각을 한반도로 돌리면 어떤가? 한반도 북쪽에 사는 수많은 동포들은 남쪽의 인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추위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북쪽의 동포들이 고통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때 남쪽의 인민들은 귀를 틀어 막은 채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시각을 한반도를 벗어나 지구촌 전체로 확대하면 어떨까? 지금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공간적 차이는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는 시대다. 그야말로 글로벌한 지구촌에 수십억 인류가 공존해 있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가을 날 보낸 서신은 강릉에 사는 지인에게 도달하려면 계절 하나를 훌쩍 뛰어 넘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실시간적으로 공조(synchronize)하는 세상이다.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딸하고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실시간으로 음성 통화나 화상 통화를 무제한으로 하는 세상이다. 이럴 때 공간적 의미의 이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구 저편에 있으니까 나와 무관하다고만 할 수가 없다. 이런 시대, 특히 2023년은 이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2021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존터를 박탈하고 난민도 수도 없이 만들어 냈지만 여전히 언제 끝날 줄 모르고 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나와 상관없다고만 할 수 있을까? 만일 신이 있다면 그들이 가슴 깊숙이 느끼는 고통을 헤아리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 달 사이 신들의 땅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그 사이 무려 2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이 죽을 때 그를 둘러싸고 그와 관계를 맺었던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씼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런 전쟁에서 그들은 각기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을 걸고 싸운다.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담보로 유지되는 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은 너무나 큰 존재라 우리의 작은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신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품지 말고 그저 믿기만 해야 될까? 이래도 신, 저래도 신이라면 그런 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신, 고통을 정당화하는 신이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신들은 인간의 탐욕의 집적체가 아닐까?


우리는 성탄절 이브를 습관적으로 즐기기 보다는 말구유에서 태어난 어린 예수의 탄생의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진정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평화‘는 말로만 하는 값싼 개념이 아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온 누리에 평화를!” 오늘 하루 만이라도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의 부끄러움을 그리고 미안함을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오늘 조용히 묵상하며 지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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