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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적 뭉개기

by 이종철

철학자 데카르트는 아침에 일찍 눈이 깼어도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신 그는 침대 위에 누워서 천장의 기하학적 도형을 보면서 끊임없이 생각의 흐름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늘 습관적으로 하는 버릇이 그의 사유를 확대하고 확장시켜 주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최근에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새벽에 눈이 일찍 깨었어도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이 침대 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한다. 데카르트는 오로지 시각과 상상력을 활용하면서 사유를 했겠지만, 나는 플러스 알파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대인의 우주목이라고 할 스마트 폰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노트북 책상이 있고, 그 책상을 밝혀주는 책상용 전등-갑자기 이를 가리키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이 있다. 그리고 손에 닿는 곳에 책 몇 권을 놓고 있다. 이런 몇 가지 도구만 있으면 굳이 밖에 나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작업을 할 수가 있다. 오히려 삐까 번쩍한 컴퓨터와 커다란 모니터 앞에서 할 때보다 더 능률적일 때가 있다. 거기서는 자주 영화를 보기 때문에 호흡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을 이용해서 대충 나에게 들어온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구글 뉴스를 통해 간단히 오늘의 뉴스도 읽는다. 다음으로 아이패들를 켜서 음악을 듣는다. kBS Kong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듣는 데는 아주 그만이다. 나는 주로 클래식을 켜놓는다. 다음으로 크롬으로 검색을 해서 국내외 뉴스를 살핀다. 그 다음에 하는 일은 아이패드의 메모장을 이용해서 글을 쓰고 이미 써 놓았던 글을 다시 살핀다. 내가 맥프로의 메모장을 통해 지난 여름에 자전적 소설을 쓸 때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아 보았다. 이 프로그램 하나만 쓰기 위해서라도 아이패드나 맥프로를 사용할 가치는 충분하다. 모든 글쟁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정도이다. 그 밖에도 앱스토어를 이용하면 글쓰기에 유용한 여러 앱들이 있지만 굳이 그런 것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이 메모장 위에서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저절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로 글을 쓰는데 아주 좋다. 글을 쓰다가 좀 쉬고 싶으면 파일 폴더에 저장해둔 PDF 형태의 문서들을 가지고 독서하기도 편리하다. 지금은 수많은 문서들이 PDF나 ePub 형태의 전자책으로 나와서 얼마든지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 연대의 온라인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필요한 논문도 다운 받고, eBook 소설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지금 세상은 화엄의 인드망이 이 자그맣고 멋지 도구 안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이다.그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모닝 커피 한 잔이다. 그것을 마실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완전히 나홀로 작업장이다. 잠자리 패턴이 틀리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거진 20년 째 각자 방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침대에 위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거진 10시 넘어서야 침대 작업장을 벗어난다. 새벽에 눈을 떳는 데 5시간 정도가 후다닥 지나간 느낌이다. 이 작업장을 벗어나면 비로소 번거로운 세속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아. 오늘이 성탄절인데, 아내는 새벽 6시에 출근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다른 날과 다르지 않다. 늘 같은 동작이 되풀이 될 뿐이다. 현대판 데카르트적 게기기를 몸으로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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